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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42> 암울한 긴급조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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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42> 암울한 긴급조치 시대

입력
2012.04.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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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3일 청와대. 대통령 박정희가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대학생들이 전국적으로 데모를 일으켜 체제 전복을 시도했습니다. 북한의 인민전 전술과도 연계된 듯 합니다."

새 학기 시작과 더불어 연초부터 떠돌기 시작한'3, 4월 위기설'이 나돌던 가운데 이 날 서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일제히 데모가 벌어졌고 시위 현장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동맹(민청학련) 명의의 유인물이 뿌려졌다.

정보부장의 보고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박정희의 얼굴이 이내 굳어졌고 이날 밤 10시를 기해 긴급조치 4호가 선포됐다.

긴급조치 4호 내용은 이랬다. '민청학련과 그에 관련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 고무 찬양 동조하거나 대학생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 또는 시험을 거부하거나 집회 시위 농성하고,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정학에서 최고 사형까지 처한다.'위반자가 소속된 학교는 폐교 처분까지 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72년 박정희가 만든 유신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긴급조치권은 단순한 행정명령 하나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폭력적이고 무제한의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초 헌법적 권한으로 사실상 반 유신세력에 대한 탄압 도구로 사용됐다.

대통령 긴급조치권은 이를 비방하면 사형까지 내릴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악법으로 74년 1월 제 1, 2호가 발동된 이래 75년 5월 제9호까지 발동됐으며 79년 박정희가 사망하면서 해제될 때까지 권력의 광기로 점철된 암흑시대의 유산이라 하겠다.

이 조치에 따라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의 배후에 공산단체인 인혁당 조직과 조총련계 일본공산당, 국내 좌파 혁신계가 복합적으로 관련돼있다며 학생을 포함 모두 1,024명을 조사해 180명을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영장 없이 잡혀온 이들은 고문과 구타를 당하며 허위 자백을 강요 받았고 법정에서 공소 사실을 부인하면 군 검찰이 구치소까지 찾아와 구타와 폭행을 자행했다. 무장한 헌병이 지키고 있는 살벌한 군사법정에서 김지하 시인과 이철, 유인태 등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후에 무기로 감형됐지만, 인혁당 관련자 8명은 끝내 사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2002년에 이르러서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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