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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살구여성회 창립자 김주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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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살구여성회 창립자 김주숙 교수

입력
2012.04.0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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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무지개상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을씨년스런 풍경이 과거로 돌아가는 듯하다. 4층 오른편으로 돌아가니 살구평생학교라는 작은 간판이 나온다. '마님 이곳에는 ooo만 버려주세요'라고 쓰여진 분리수거 쓰레기통 4개를 보는 순간 허름한 이곳이 발랄하고 유쾌한 2012년식 시민운동 현장이라는 게 실감난다. 교실 세 개에서는 한글 영어 컴퓨터 교육이 한창이다. 21년전부터 지역여성들에게 문해교육을 해온 살구여성회(사단법인 살기 좋은 우리구 만들기 여성회)의 가장 중요한 교육프로그램이다.

김주숙(71)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1991년 미국 재단의 연구기금을 받아 구로구의 빈민실태를 조사한 후 내처 여성모임을 만들었다. 대학교수에 아이 넷의 엄마, 남편은 농촌운동가에다 정치가(이우재 전 민중당 대표)였으니 남보통으로만 살아도 쉴 틈이 없을 텐데 쉰 한 살에 지역사회를 살리는 일을 보탰다.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다 파지 줍는 할머니들이 굶는 것이 안쓰러워 무료밥집을 열고, 학교에서 끝나면 빈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골목을 배회하는 어린이들이 안타까워 공부방을 만들었다. '먼저 배운 사람이 가르쳐주고, 조금 더 잘 살게 된 사람이 보태주는' 품앗이조직으로 꾸렸다. 그는 살구여성회의 20년을 기록한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를 최근 펴냈다. 2년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도 살구여성회를 돕는 그가 꿈꾸는 세상은 젊은 시절 유학한 스웨덴에서 본 다양한 복지가 한국사회에 자리잡는 것.

_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30대도 왔는데 이제는 50대까지는 올라갔어요. 책도 읽고 신문도 읽고 한자도 자연스레 원리를 깨쳐주니까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법을 알게 되지요."

_왜 하필 금천구에서 하세요.

"83년부터 여기 살아서요. 그때는 구로구라 '살기 좋은 구로지역 만들기 여성회'를 줄여서 살구여성회로 불렀어요. 금천구로 떨어져 나오면서 지금 이름으로 바꿨지요."

_어떻게 이 동네와 인연을 맺었어요?

"68년에 결혼해서 애를 줄줄이 셋을 낳았어요. 모래네 사글세방에서 전세방 전세집 그렇게 옮겨가다가 74년에 실평수 8.5평 연희동 시민아파트에 살 때였어요. 방이 두 개인데 하나는 우리 식구가 살고 하나는 애들 봐주시는 아주머니가 살고 거실에는 남편이 대학 다닐 때 신세 진 학생이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살았으니까 그 집에서 여덟아홉명이 살았어요. 시골 사는, 아주머니의 중학생 아들이 방학이면 엄마 집이라고 왔고요.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효재 교수님의 연구조교로 있을 때인데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갔다가 정양숙씨와 한방을 쓰게 됐어요. 나중에 광주사태 비디오를 해외에 알린. 넷째(영화 '모던보이' 원작자인 소설가 이지민씨)가 생겨서 배가 부를 때니까 정양숙씨가 거기서 어떻게 열명이 사느냐고,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미국 감리교단의 지원을 받아 구로구 독산동에 공동주택을 짓는 조합을 만드니 참여하라고 해요. 집 짓는 돈은 미국에서 빌려준다고요. 그랬는데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가 '빨갱이'라고 미국 재단에서 요구하는 재정보증을 금융기관 어디에서도 해주질 않는 거예요. 결국 공동주택 계획도 무산되고 땅만 쪼개서 조합원들한테 나눠 팔았어요. 그 땅을 사놓고는 스웨덴으로 77년에 유학을 갔어요. 그때는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올 생각이었는데 79년에 남편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니까 다 때려치우고 서울로 돌아왔지요. 83년에야 집을 지을 수 있었어요."

_집도 좁은데 애는 왜 그리 많이 낳으셨어요?(웃음)

"남편은 농민운동 한다고 시들부들 돈도 못 벌고 사건에 얽혀서 경찰서 가고 나는 돈 번다고 연대 의대에서 조교를 하고 그러니까 사는 재미가 없잖아요. 유학을 갈 수도 없고 사회적 성취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애가 생겼다, 아, 애나 낳아서 잘 키우자 그랬어요. 의대 조교니까 병원 이용하기 얼마나 좋아요.(웃음)"

­_전공은 사회학(이화여대 사회학과)인데 의대에서 조교를 해요?

"의대 예방학 교실에는 가족계획 연구 때문에 사회학 하는 사람이 다 있었어요. 미국 인구협회 지원금을 달러로 받아서 월급이 제법 되었어요. 조교 7년차라 곧 전임발령 받을 거였고요. 그런데 71년에 이효재 교수님이 연구프로젝트를 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길래 다 버리고 갔지요. 가보니까 월급은 반토막이고 선생님도 이걸 알았으면 오지 말라고 했을 거예요. 그런 게 손해라고 생각을 안 해요. 83년도에 한신대 교수가 되고 보니까 진작에 교수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1979년에 남편이 전주교도소에 있을 때 나는 전북대 교수나 하련다 하고 교수공모에 나갔다가 합격했다는 통보까지 받았는데 신원조회에 딱 걸리더라고요. 나는 무슨 계획을 정교하게 하지 않아요. 그냥 이걸 해야겠다 싶으면 해요. 교수는 못되고 남편은 감옥 있고 그 해 말에 생활비가 딱 80만원이 남길래 아는 언니한테 10만원 꿔서 피아노 샀어요. 에라, 너희는 똥땅거리고 놀아라, 집에 연탄있고 쌀 있으니까 겨울 넘긴다, 그랬더니 정말 그 다음해 초에 호주에서 인권단체를 통해 돈이 와서 제가 한명숙(현 통합민주당 대표)이네 집에도 나눠줬다니까요. 돌아가신 김진균 교수(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한약상 하던 집안이라 녹용 썰어주면 녹용장사 해서 먹고 살았어요.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_살구여성회도 그냥 해야겠다 싶어서 만든 건가요?

"가난한 지역 연구를 해보니까 여성들이 정치참여를 해서 세상을 바꾸는 게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지역의 여성들을 만나보니까 한글을 몰라서 힘들어하는 정도라 가르쳐서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그게 끝도 없이 가는 거예요. '금천구에 한 명의 문맹자도 없을 때까지 우리는 가자'그랬어요. 영어나 한글을 대단한 학자나 교수가 가르치는 게 아니잖아요. 먼저 배운 사람이 늦깎이를 가르치자. 여기서 한글을 익힌 30대 주부가 검정고시도 보고 운전면허를 따서 트럭으로 야채장사를 하다가 이제는 식당을 운영해요. 한글 깨치면 영어 배우고 싶다고 하고 영어 배우면 팝송 배우고 싶다고 해서 수강생들끼리 자연스레 교육과정이 넓어지고 있어요."

_평생학교 말고 또다른 프로그램은 없어요?

"무료급식소인 따뜻한밥집을 97년부터 시작했고 거기가 점심 때만 쓰니까 비어있잖아요. 여기다 학교 마치고 갈 데 없는 청소년들을 데려다가 돌보자 해서 희망청소년방과후학교를 만들었어요. 살구요양방문센터라고 요양보호사를 파견하는 사업단을 2009년에 시작했어요. 자원봉사라는 게 남편이 안정된 직업이 있어서 유휴시간을 내놓을 수 있는 중산층 주부에게나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금천구 지역은 좀 살만하면 다른 동네로 이사가고 요즘은 교육비 생활비가 많이 들어가니까 중산층 주부들도 구청에서 하는 짧은 일자리가 생기면 다 그리로 가요. 이제는 사회단체도 봉사하는 사람을 찾을 게 아니라 일자리를 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그래서 2010년부터 '찾아가는 어른공부방'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어요. 공부는 하고 싶은 데 못 오는 사람들, 자영업자, 애기 돌봐주는 할머니, 살림하는 주부, 시설에 있는 분들한테 찾아가서 가르치는 거지요. 그걸 가르치는 분들한테는 일자리가 되고요. 이거 학습지 회사에서 벤치마킹했어요.(웃음)"

_공부는 스웨덴에서 하셨지요? 2012년의 한국사회는 30여년전 스웨덴의 복지수준은 됐나요?

"한참 멀었지. 스웨덴에서 가족정책발달사를 연구하기 전에 덴마크에서 1년을 지냈어요. 간호사랑 어떤 집을 방문했는데 멀리서까지 시체 썩는 냄새가 나요. 제 힘으로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뚱뚱한 할머니인데도 자기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니까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를 파견해요. 그룹홈으로 가고 요양원도 갈 수 있지만 자기 집에서 죽겠다고 하면 받아줘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개인의 의지를 존중해요. 스웨덴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기초수급자의 집을 가보면 방 하나에 거실 욕실 부엌은 있어요. 햇볕 잘 들고 바람 통하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방 한 개에, 그것도 난방을 해달라면 따로 돈을 내야 하는 그런 게(쪽방) 있어. 진정한 복지국가는 기본적인 삶은 당연한 권리로 보장이 되는 제도를 마련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 잘 잤다 그러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해. 그리고 커피를 마실까 홍차를 마실까 골라 마실 수는 있어야 돼. 학교를 가거나 책을 읽거나 직장을 가거나 은퇴를 했으면 놀거나 적정한 수익이 있어서 생활이 돼. 그리고 이웃들과 우리 인생이 이렇구나 저렇구나 이야기를 해. 그 정도의 삶이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해요."

_어떻게 하면 복지국가가 될까요?

"크로포트킨의 '사회부조진화론'이라는 책을 보면 우주 만물이 다 협동을 하고 협동을 하는 개체들이야말로 살아남는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경쟁을 하면 살아남는다고만 알아요. 그렇다고 스웨덴의 복지시스템이 무조건 주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굉장히 냉정해요. 우리나라 여자들은 가정주부가 직업인줄 알잖아요. 스웨덴에서 가정주부는 굉장히 불리해요. 모든 사람이 받는 연금이 있고 직장생활과 연관해서 받는 보충연금이 있어요. 직장생활을 하면 보충연금을 더 받으니까 노후가 더 좋아요. 그러니까 서로들 좋은 직장을 갖고 일을 하려고 하지. 모든 성인은 자기의 노동력으로 자기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게 사회정신이에요. 이런 건 없이 혜택만 보려고 하면 유지하기 힘들지요. 자기 노동으로 자기생계를 번다. 자기 노동으로 자기생계를 벌 능력을 갖도록 국가가 지원을 해준다. 여자가 애를 낳았어요. 애를 키우려면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직업을 가질 수가 없잖아. 그러면 빈곤층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애를 낳았을 때 아이를 돌보도록 양육수당을 주고 이 여자에게 직업교육을 시켜줘요. 수혜자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떳떳하게 자기 힘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요. 생계를 벌 능력이 없는 사람만 지원하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이 근근이 먹고 살 정도로 시혜를 베푸는 건 복지가 아니에요.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당연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기술교육이나 시민교육도 필수에요. 우리나라도 그 많은 교육낭비만 줄이면 모든 사람에게 기술교육 시민교육이 다 가능해요."

-교육낭비는 개인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요.

"왜 이런 사회적인 낭비가 일어나느냐. 직업에 따른 수입차이 때문에 그래요. 최저임금이 최소한 150만원은 되어야 둘이 벌었을 때 300만원이 되고 교육비가 안 들고 의료비가 안들고 주택비가 싸면 가능하지요. 이런 제도가 되어 있으면 사람들이 학벌을 위해 기를 쓰고 교육낭비를 하는 게 사라지겠지요."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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