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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천재' 이종범 전격 은퇴/ "선수로 뛰고 싶었다, 자리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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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천재' 이종범 전격 은퇴/ "선수로 뛰고 싶었다, 자리가 없다고 한다"

입력
2012.04.0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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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광주와 KIA 타이거즈를 떠나 진로를 생각해 볼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 오는 이종범(42ㆍKIA)의 목소리에는 아쉽고 서운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처럼 홀가분한 느낌도 전해졌다. 이종범은 31일 전격 은퇴를 선언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긴박했던 은퇴 발표로 그라운드와 작별을 선언한 이종범은 1일 전화통화에서 "아쉽지만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뒤 "감독님이 부임하셨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좀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며 선동열 감독의 은퇴 종용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종범의 거취 문제가 급작스럽게 거론된 건 지난 30일 대구 원정 길에서였다. 이순철 수석코치가 면담을 통해 개막 엔트리 합류가 어려울 것이라는 팀 사정을 전하면서 플레잉 코치로 새 출발 할 것을 이종범에게 권유했다. 이 코치에 따르면 이 때만 해도 그다지 감정 상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듯했던 이종범이 31일 광주 한화전 직후 선 감독과 김조호 단장에게 차례로 은퇴 의사를 밝힌 뒤 모든 지도자 제의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일부 언론에 공개했다는 것. 선 감독도 1일 광주 한화전에 앞서 "섭섭한 것은 이해하지만 성급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구단과 상의해서 멋지게 은퇴경기까지 했으면 좋았을 텐데 본인이 기회를 차 버린 것 같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이종범은 "이 코치님이 불러 올시즌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으시기에 '선수로 뛰어야죠'라고 했더니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감독님께 다시 묻겠다고 했고, 다음날 감독님을 찾아가 물었더니 같은 말씀을 하시기에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종범은 "구단은 최근 들어 전혀 나에게 은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의 결정에 최고 지도자 대우를 보장해준 구단에는 너무 감사하다"면서 구단의 개입은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셨지만 당분간 팀을 떠나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든 광주도 떠난다. 2일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할 예정이다. 그의 말처럼 향후 거취는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이종범 은퇴 야구계 반응 "안타깝다" 이구동성

"안타깝다." 선 감독을 비롯한 야구인들의 공통된 한 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수년째 은퇴 시기를 저울질하던 이종범이 선수 생활을 더 연장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은 아니었다. 정규시즌 개막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불세출의 스타플레이어 이종범의 은퇴 모양새로는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종범의 서림초-충장중-광주일고 선배인 김기태 LG 감독은 1일 잠실 넥센과의 시범경기 최종전을 앞두고 "안타깝다"고 짧게 말했지만 그런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불과 지난주 광주 KIA와의 시범경기에서도 이종범과 따로 만나 서로에게 올 시즌 선전을 당부하기도 했었다. 이종범의 광주일고 후배인 넥센 김병현은 "개인적으로 팬이자 후배로서 아쉽고 안타깝다"면서 "구단 사정이 있는 것이니까"라며 말을 아꼈다.

'야구 천재'라 불린 '바람의 사나이'

이종범은 '야구 천재'라 불리며 호타준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선수였다.

건국대를 졸업한 뒤 1993년 1차 지명으로 해태(KIA 전신) 유니폼을 입은 그는 첫 해부터 126경기에 나서 타율 2할8푼, 133안타, 16홈런, 73도루로 팀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듬해인 94년에는 196안타, 84도루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한 시즌 최다 기록을 세웠다. 정규 시즌 MVP, 타격 4관왕,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등을 휩쓸며 명실상부한 천재로 불렸다.

그는 96년과 9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뒤 98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 입단했다. 그러나 첫 해 가와지리 데쓰야(한신)의 투구에 맞아 오른 팔꿈치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며 고전했고 결국 3년 반만인 2001년 8월 전격적으로 국내(KIA)로 돌아왔다.

이종범은 외야수로 변신한 2002년과 2003년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03년에 도루왕을 차지하는 등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그는 국가대표로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는 일본 성적을 포함해 19시즌 동안 2,017경기에 출전해 2,033안타, 221홈런, 829타점, 563도루, 타율 2할8푼4리를 기록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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