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월6일 오후 일본 지바(千葉)마쿠하리 메세 센터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 결승전. 남북단일팀과 중국은 세트 스코어를 2-2로 주고받으며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 북한의 유순복과 중국의 가오준이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이미 국내 일간 신문들은 지방판 마감 시간(오후 6시30분)을 넘긴 상황이라'오후 6시40분 현재 2-2'라는 1면 제목으로 윤전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남북단일팀은 첫 번째 단식에서 당시 세계 최강인 덩야핑을 꺾으며 돌풍을 일으킨 무명 유순복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마침내 유순복이 예상을 뒤엎고 중국의 가오준에 승리하자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단일팀의 한반도 깃발이 시상대 위로 올라가면서 경기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3시간40분간의 접전 끝에 얻은 눈물겨운 승리였다. 현정화는 이 대회 준결승인 헝가리전에서 홀로 3승을 이끌며 단일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며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아직도 21년 전 이 사건을 생각하면 감동이 벅차 오른다. 그 기억이 영화'코리아'로 만들어져 5월 개봉된다. 하지원이 현정화역, 배두나가 북한의 이분희역을 맡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라켓을 잡았던 현정화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을 합쳐서 총 5번의 우승을 거두며 우리나라 선수로는 유일하게 국제탁구연맹(ITTF)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남북단일팀 우승을 이끈 경험으로 지금은 통일교육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은 탁구로 시작됐지만 이 길을 통해 다른 길과 만나게 될 가능성도 생겼다고 말했다. 탁구 때문에 '엄마의 길'을 가장 먼저 포기했다는 그를 만났다.
-영화는 다 찍었나.
20여년 전 얘기긴 해도 지금 영화를 통해 바깥으로 나오는 거라 의미가 있다. 남북한 문제와 연관이 되는데다 미묘하게 정치적 상황과 물려서 이슈가 되는 것 같다. 남북단일팀 우승 1주년, 2주년과 같은 행사나 사업을 못했나 하는 자책도 했다. 탁구협회 전무 맡은 것이 1년 밖에 안됐지만 협회 입장에서도 좋을 텐데 '왜 이런 일을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 일은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일단 정부도 좋은 반응이고 좋은 답을 들었다. 2년 전 이맘때 태릉에서 대표선수 가르칠 때 '이 소재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제의가 있었다. 그래서 '왜 이제 오셨어요. 정말 좋은 아이템인데'라고 했다. 그분들의 진정성을 본 거다. 스포츠 영화중 이런 영화는 없을 거다. 시합 영상도 구해다 줬다. 작년에 배우 캐스팅하고 여기 안양농심체육관에서 탁구를 가르쳤다. 3~4개월 가르쳤는데 선수들이 다 들러붙었다. 밤중에만 가르쳤다. 촬영은 작년 5월부터 시작됐다. 9월까지 촬영하고 지금은 마무리 작업 중이다. 5월에 시작해서 여름까지 가는 영화시장이 좋다고 하더라. CJ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했다. 배급사도 CJ다. 50억원 이상 투자한 영화인데 윗선에서 영화가 좋다고 홍보에 전면 투자하라고 해서 20억원 이상 홍보에 추가 투입된다고 했다.
-어떤 부분이 감동적인가.
남북이 처음 만났을 때는 좀 어색했지만 서로 화해하고 마음을 주다가 우승을 한다. 그때의 감동이 뭉클한데 곧바로 헤어져야 하는 운명이다. 거기에 폭풍 눈물이 있다. 또 각색을 한 것이지만 갈등 상황을 좀 주는 모양이다. 영화상에선 정치적으로 갈등을 빚다가 다시 시합하고 이런 게 있나 보다. 세번쯤 감동의 요소가 있는 것 같다.
-직접 출연했나.
안 한다고 했다. 까메오로 출연하자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리얼리티가 안 살 것 같아서 '재미없다'고 했다.
-주로 어떤 장면이 나오나.
연습하는 장면, 시합하는 장면도 있고 진짜 경기장을 재연해서 경기하는 장면들이 있다. 하지원씨 같은 경우는 처음에 라켓도 못 잡았다. 핸드볼이라면 던지고 뛰면 된다. 근데 서브 넣고 드라이브 걸고 돌아서 때려야 하니까 기술을 똑같이 가르쳐야 했다. 폼이 나와야 되고 힘도 써야 한다. 배우들이 그것 땜에 힘들었다. 밤 10시까지 연습하면 배고프다. 체육관 앞 닭발집에서 배우들이랑 소주 먹으면서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탁구 영화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나 보다.
그렇다. 왜 이런 소재를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우생순'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소재다. '국가대표'를 보면서도 눈물을 질질 짰다. 하지만 우리 영화는 후반부에 30~40분은 울어야 된다.
-지바 탁구대회 당시 기자들은 기사 쓰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감동도 못 느꼈다. 당시 신문 지방판에 '6시40분 현재 세트스코어 2:2'로 나왔다.
그 얘기 들으니 또 생각나는 게 있다. 우승한 뒤 시상대에서 아리랑이 연주되면서 또 눈물을 쏟는다. 헤어질 때도 그런 장면이 있다. 울어야 할 요소가 몇 번이나 있다.
-남북한 탁구교류에 대해서 북한측과 얘기 해봤나.
좋다고 했다. 근데 우리 통일부 쪽에서 정치적인 문제이니 인내하면서 하라고 했다. 계속해서 두들기라고도 했다. 탁구협회쪽 루트는 아주 작은 것이므로 공식 절차만 밟아주고 정부나 민간 쪽 단체 루트를 다 이용할 생각이다. 북한 접촉이나 법적인 문제는 통일부에서 가르쳐준다.
-통일 강연은 어땠나.
통일부 쪽에서 제의가 왔다.'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별로 없다'고 했더니 남북단일팀 얘기를 해주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감동이 있었다는 걸 얘기했다. 통일이 되면 어쩌고 하는 것은 어렵고 식상하다. 사실적인 걸로 접근하니 더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거기에 탁구와 연관돼서 나간 거라 2배 효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언제 이화여대 같은 데서 강연을 해보겠나. 새터민 대상 강의도 남북단일팀 얘기만 했다. 근데 그분들이 나를 알아봤다. 단일팀 구성이 20년이 넘었다. 그래서 더 솔깃해서 들은 것 같다. 이제는 남북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공부도 좀 해야 할 것 같아 통일부 최고위 과정도 공부하고 있다.
-그러다 남북문제 전문가로 나서는 것 아닌가.
아무튼 재미있다. 영화도 하고, 통일도 관련되고. 내가 한 길로 온 건 맞는데 한 길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만나게 되는 상황이 온 거다. 일단 탁구가 중요하다. 다른 길로 가자는 건 아니다.
-체육인으로써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체육 행정가를 해보고 싶다. 대한체육회에서 일하면서 스포츠인들의 여건과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현장에 있어보니까 문제가 많다. 엘리트 선수들에 대한 구제책이 별로 없다. 공부를 한 사람들은 20대 후반에는 평생 직장으로 간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직장이 아니다. 선수들에 대한 직업보장을 팀에서 책임져야 한다. 또 팀이 없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회사가 이익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 국가가 혜택을 줘야 한다. 그럼 서로 하려고 하지 않겠나. 야구나 축구 등 인기종목에 너무 투자가 많이 되고 탁구 같은 곳에는 너무 안 된다. 체육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프로 탁구는 추진되고 있나.
아직 안되고 있다.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도 프로가 있다. 준비는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반면 동호회 활동은 많다. 탁구를 활성화하려면 엘리트 선수의 육성이 중요하다. 이들에게 가산점을 줘서 학교 쪽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선수들이 서른살이 넘어가면 실업팀을 떠나는데 이후에 갈 곳이 없다. 이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들은 운동기술은 좋지만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아 교원 자격증을 따거나 임용고시를 보는 재주가 없다. 따라서 중고등학생을 가르칠 방안이 없다. 그래서 이들이 사회체육으로 빠지거나 개인사업을 한다. 중국은 엘리트 선수들이 학교에 코치나 감독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기술이 보존되는 거다.
-얼마 전 국제탁구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에서 다섯 개 이상 금메달을 딴 선수라야 자격이 있다. 우리나라는 나오기가 힘들다. 내가 유일하게 딱 다섯 개를 땄다. 그러려면 세계선수권부터 우승을 해야 한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기회가 온다. 세계선수권 대회는 자주 있지만 중국 선수들 때문에 우승이 어렵다.
-세계 선수권대회 우승이 올림픽보다 더 어려운가.
그렇다. 올림픽은 국가당 두 명 밖에 못나간다. 그래서 선수층이 두터운 중국이 불리하다. 올림픽이 명예는 높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야 실력을 인정받는다.
-국제연맹에서도 활동하나.
조금씩 하고 있다. 국제탁구연맹(ITTF)에서 미디어 위원으로 활동한다. 연맹도 들어와서 일을 해주길 바란다. 근데 지금 한국 탁구도 이 모양이라 국제연맹에서 맹활약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영어 하려면 나가서 공부도 좀 해야 하는데 시간도 없었다. 선수 끝나고 계속 대표단에서 가르치다가 작년에 협회 일을 맡았다. 한번쯤 유학도 생각해 보려 한다.
-북한의 이분희 유순복을 이후에 본적이 있나.
이분희는 못 봤고 유순복은 중국에서 한 번 봤다. 지바 대회때 유순복이 우승에 기여를 많이 했다. 결승전에서 두 게임을 잡았다. 내가 두 게임 뛰고 유순복이 두 게임 뛰고 이분희하고 나하고 복식을 뛰었다. 이분희가 컨디션이 안 좋았다. 간염이 있었다. 연습할 때부터 컨디션 안 좋고 운동도 제대로 못했다. 순복이가 결승 단식에서 세계최강 덩야핑을 이겼고 내가 가오준을 잡았다. 복식과 다음 단식에서 지면서 세트 스코어 2-2가 됐지만 마지막 세트에 유순복이 가오준을 잡아 우승했다. 사실 결승만 올라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선수생활과 협회 행정업무랑 차이가 좀 많을 텐데.
힘들다. 시합도 많고 선수 육성하려니 돈도 필요하다. 예산 10억원으로는 턱도 없다. 사무직 월급으로 예산의 반이 날아간다. 그러니까 사업을 해야 한다. 스폰서도 구해야 한다. 발로 뛰어야 한다.
-현정화라는 타이틀이 도움이 되나.
그렇다. 내가 부탁하면 다 한번에 OK 해주신다. 다 호의적으로 해주시니 감사하다.
-연금이 많지 않나.
100만원이다. 1988년에 내 월급이 30만원이었는데 그때 100만원이면 많은 돈이었다. 근데 지금 100만원이면 좀 그렇다. 연금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머니께 다 드렸다. 지금은 그 돈에 플러스로 더 드린다.
-두 번 우승하면 두 배 아닌가.
아니다. 점수에 따라서 일시금으로 얼마를 주고 퉁친다. 체육쪽은 너무 퇴보했다. 문화관광체육부에서 한류에만 1,000억원씩 쓰지만 체육에는 700억~800억밖에 안 쓴다.
-친한 사람들이 누군가.
탁구인들은 다 친하다. 13~14살 때부터 본 사람들이다. 지금이야 유남규감독, 김택수감독 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오빠오빠 했다. 땀 흘리면서 만났던 친구들이고 남편보다 더 얼굴을 많이 맞대고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다. 뭘 도와달라고 하면 무조건 우선순위다.
-예전엔 좀 선머슴 같았는데 오히려 지금이 여성스럽다.
진짜인가.(하하하) 그때는 내가 일등 해야 하고 언론에서도 주목하니까 좀 뻣뻣했던 것 같다.
-팀 동료였던 홍차옥은 요즘 뭐하나.
가정 주부로 잘 열심히 산다. 결혼 일찍 하고 애를 셋이나 낳았다.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애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가 다 키워야 했다.
-여전히 술은 많이 마시나.
어제 하루 쉬었다. 5일 먹고 하루 쉬고, 또 오늘부터 연짱 5일은 먹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체력이 좀 되는 모양이다.
-엄마이자 아내, 탁구인으로 힘들 것 같은데.
엄마의 길을 먼저 포기했다.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다. 그 다음은 남편이다. 나 대신 역할을 많이 해줬다. 큰 일 하라는 차원에서 그렇게 해준 것 같다. 감사하고 미안하다. 애들한테도 그렇다.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면서 자립심을 키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시간이 나면 가족들이랑 같이 한다. 대회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서 여행 계획을 잡는다. 그게 다다. 아침 저녁 차려주는 건 작년부터 시작했다. 대표단에 있으면 집을 거의 비워야 하지만 요즘은 가능하다. 그게 너무 좋다. 애들 다 챙겨놓고 나온다. 토ㆍ일요일 저녁은 되도록 약속을 안 잡는다. 가끔 토요일에 약속이 있는데 그럴 땐 참 미안하다. 김치찌개만 함께 끓여 먹어도 행복하다. 남들은 매일 하는 거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한다.
● 현정화는 누구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성대 유아교육학과와 고려대 체육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1989년 독일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대회 혼합 복식 우승,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 1993년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우승 등 화려한 전적을 남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9년 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2010년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까지 대표팀 지휘를 맡았다. 현재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이자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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