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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오래 오래' 도전하는 사랑은 세월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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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오래 오래' 도전하는 사랑은 세월도 뛰어넘는다

입력
2012.03.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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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오래/에릭 오르세나 지음·이세욱 옮김/열린책들 발행·616쪽·1만3,800원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 작가인 에릭 오르세나(65ㆍ사진)가 2006년 발표한 이 소설은 특별한 사랑 이야기다. 새해 첫날 운명적 사랑으로 조우한 중년의 기혼 남녀가 그 주인공. 남자는 정원을 만드는 원예가 가브리엘, 여자는 프랑스 외무부 고위 공무원인 엘리자베트. 사십 줄에 늦사랑에 빠진 이들은 이후 반평생에 걸쳐 세계 각처에서 모험 같은 연애를 펼친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자마자 부인과 헤어진 가브리엘과 달리, 엘리자베트는 애써 일궈놓은 가족과 사회적 지위를 버리지 못한다. 그들의 사랑은 그러니까 불륜이다. 직업상 해외 근무가 많은 여자 쪽이 주도권을 쥔 이들의 사랑은 프랑스 파리, 스페인 세비야, 영국 켄트 등 매혹적인 유럽 도시들을 오가며 몰래 이뤄진다. 벨기에 헨트에서는 1년 간의 달콤한 동거도 성사된다. 그러나 새 가정을 꾸리는 일에 상대가 먼저 나서주길 바라며 주저하는 사이, 간헐적인 짧은 만남과 긴 기다림은 장장 40년 간 이어진다.

한편 만난 지 1년 된 해에 둘은 기찬 모험을 감행한다. 훗날 소설가로 자라 친부모의 사랑을 기록해줄 아기를 만든 것. <돈키호테> 의 고장 세비야를 잉태의 장소로 고른 것도 세르반테스의 문재(文才)를 타고난 아기이길 원해서다. 이 무구한 바람은 대를 건너 할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손자를 통해 실현된다.

소설의 화자는 가브리엘.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무람없이 오가다가 결국 가브리엘이 손자에게 남기는 서신으로 귀결되는 이 소설은 익살스럽고 수다스럽고 질펀한 이야기의 향연이다.(<돈키호테> 의 현대적 부활이랄까) 바람둥이 아버지와 그의 주책없는 정부(情婦) 클라라-앤 자매는 가브리엘의 늦바람을 부추기며 작품 초반부터 폭소탄을 터뜨리는 조연들이다. "저 여자가 왔으니, 너는 전쟁을 치르게 될 거야. 이 세상에 그 전쟁보다 소중한 건 없다."(153쪽) 두 주인공의 정사를 묘사하는 장면들은 에로스가 물씬하다. 유럽 전역도 모자라 중국으로 뻗는 광대한 무대와 폭넓은 이야깃거리는 공무원이자 정치인, 학자이기도 한 작가 오르세나의 풍성한 이력의 소산이겠다.

정원을 빼놓을 수 없다. 파리식물원, 시싱허스트 정원(영국), 원명원(중국 베이징) 등 세계 각지의 유명 정원들은 주인공들이 애욕을 발산하는 은밀한 장소이자 그들의 관계가 중요한 국면을 맞는 곳이다.(작가 이력 중엔 국립 고등 조경학교 학장도 있다) 남자는 파리식물원에서 여자를 처음 만났고, 고산 식물 정원에서 첫 관계를 가졌으며, 시싱허스트에서 여자의 남편과 사랑의 혈투를 벌여야 했다. 어느덧 노인이 돼버린 그들은 원명원에서 드디어 '오래 오래'된 사랑의 결실을 거둔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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