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시절에 인기 있었던 대학생 대상 가요제에서 가장 '튀는'출전자는 단연코 심수봉이었다. 아직도 그녀를 처음 봤던 1978년 mbc대학가요제를 기억하는데,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그때 그사람' 노래 자체가 당시의 가요제풍이 아니었다. 외모도 대학생 특유의 풋풋함과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없어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런 첫인상 때문에 심수봉이라는 가수에 대해 그다지 호감이나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들은 노래 한곡이 그녀에 대한 관심을 180도 바꿔놨다.
'무궁화'라는 노래였다. '조국애'를 화두로 삼은 노래를 이렇게 애절하고 부드럽고 아기자기하게 부를 수 있다니. 조국과 내 아이를 연결시킨 가사는 한편의 드라마였고 멜로디는 다른 가사를 붙인다면 사랑노래로도 전혀 손색이 없을 이 노래 때문에 나는 심수봉의 팬이 됐다. 언젠가 대학로에서 열렸던 소극장 콘서트에서 본 심수봉은 어찌나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지 같은 여자로서 100%공감이 갔다.
힘들고 아픈 시간에서 우러나오는 경험과 타고난 재능, 노래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그녀의 뛰어난 가사에 담겨졌다. 그녀가 쓴 가사는 첫문장에서부터 사람을 확 사로잡아버린다. 첫소절에서 이미, 아! 하고 감정이 요동을 쳐버리는 것이다.
' 큐피트 화살이 가슴을 뚫고 사랑이 시작된 날, 또 다시 운명에 페이지는 넘어가네' 로 시작되는 '비나리'가 대표적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한 가사가 또있을까.'사랑밖엔 난몰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백만송이 장미', '미워요', '젊은 태양', '당신은 누구시길래',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등 수많은 히트곡도 내 생각엔 남다른 작사능력이 큰 힘을 발휘한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가사로 나는 '장미빛 우리 사랑'을 꼽고 싶다.
'언젠간 떠나갈 인생이지만 되도록 오래 남아줘요.
때론 바라보며 때론 기다리며 이대로 이렇게 지켜줘요.
단 하나 당신, 내 사랑 당신,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줘요.
오늘은 왠지 울고 싶어요. 당신의 품이 슬퍼져요.
불타는 사랑, 그윽한 눈길, 부드러운 음성, 그대사랑.
장미빛 정열, 장미빛 순결, 장미빛 향기,우리 사랑 나는 태우리.'
사실 심수봉의 가사는 대놓고 슬프지는 않다. 그럼에도 심수봉 목소리 자체가 워낙 가녀리고 슬픔이 녹아있다보니 왠지 좀 청승맞고 서글픈 느낌을 받는데, 이 노래만큼은 멜로디와 가사가 모두 밝다. 그런데도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아마도 이런 가사가 나오기까지 그녀가 겪은 아픔을 대충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게다. 어디 심수봉뿐이겠는가. 유명하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았을뿐, 우리의 삶도 다 한편의 드라마고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사연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그 폭풍의 시절이 다 가고 드디어 진실한 사랑과 평화가 왔을 때는 오히려 가사 한 대목처럼 '오늘은 왠지 울고 싶어'지는 것이리라.
2003년, 캐나다 이민 100주년 기념 공개방송 때문에 며칠 가까이서 지켜본 그녀는 음악 앞에서 거의 '성직자'와 같았다. '음악'과 '사랑'밖에 모르는 그녀의 인생은 어쩌면 이제부터 장미처럼 화려하게 꽃필것만같다.
조휴정ㆍKBS 해피FM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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