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마트 매각 과정에서 회사에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치고 역외투자 수법으로 자녀에게 변칙 증여를 한 혐의 등으로 선종구(65) 하이마트 회장에 대해 대검 중수부가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이 28일 법원에서 "범죄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사유로 기각됐다. 지난달 말 수사에 착수하면서 "국부 유출과 역외탈세를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던 검찰로서는 상당히 체면을 구겼다.
특히 하이마트 사건은 '스마트 수사'를 표방한 한상대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의 최정예부대인 중수부가 본격적으로 나선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으나, 선 회장에대한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법 박병삼 영장전담판사는 전날 선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진행한 뒤 이날 새벽 2시쯤 "여러 범죄 혐의사실 중 중요 부분에 대해 소명이 부족하거나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아직은 범죄 혐의 입증이 부족한 단계에 불과해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검찰이 선 회장에게 적용한 죄목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횡령,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배임수재,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5가지에 이른다. 검찰에 따르면 선 회장은 2005년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가 조세피난처인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하이마트를 인수할 당시, 하이마트 자산을 담보로 제공해 2,000억원대의 손실을 회사에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피인수 기업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인수합병을 하는 차입매수 방식을 썼다는 것이다.
선 회장은 또 2007년 말 하이마트 2차 매각 때 유진그룹의 인수를 도와주는 대가로 700억원어치의 주식 취득권, 현금 500억원을 받는 내용의 이면계약을 맺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선 회장이 1차 매각시 자신의 원래 지분(13.97%)를 전량 매각하면서도 자녀 명의로 페이퍼컴퍼니의 지분(14%)를 따로 확보하는 수법으로 지분율을 유지, 2차 매각시에 매각대금 2,000억원을 배당받는 변칙 증여를 했다고 보고 있다. 차입매수 방식으로 개인적 부를 취득, 회사는 물론 하이마트 소액주주들에게도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차입매수 방식과 역외투자 등은 선진국에서 흔히 쓰는 경영기법"이라는 선 회장 측 주장에 일단 손을 들어줬다. 국세청 전문가들까지 지원을 받아 한 달여 이 사건에 올인했던 수사팀으로서는 뼈아프게 들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법리적 다툼의 소지가 있는 혐의는 일단 남겨두고 입증이 확실한 일부 혐의만으로 영장을 청구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납품업체에서 10억원대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선 회장과 함께 영장이 청구됐다가 이날 구속된 김효주 하이마트 부사장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영장 범죄사실 범위를 두고 토론을 했고, 정공법을 택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선 회장의 아들 현석(37)씨가 대표로 있는 IAB홀딩스가 2007년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애로우드 골프장을 1,299만2,500달러에 인수한 사실을 파악,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나 세금 탈루 등 불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를 포함해 보강 조사를 거친 뒤 다음주 중 선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지, 불구속 기소로 수사를 마무리할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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