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네게브 사막과 이집트 시나이 반도가 접한 국경지대에는 요즘 뱀처럼 구불구불한 공사현장이 꼬리를 물고 펼쳐져 있다. 이스라엘이 홍해의 아카바만에서 지중해 인근까지 국경을 따라 241㎞ 길이의 보안장벽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전자경보 기능을 갖춘 7m 높이의 철조망을 세우고, 침입자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모랫길을 깔고, 감시카메라와 군초소를 설치하는 공사다. 13억셰켈(약 3,979억원)이 투입된 공사는 하루 평균 500m씩 장벽을 설치해 올해 말 완공될 예정이다.
스스로를 '정글 속 빌라'라고 표현하듯 아랍국에 둘러싸인 유대국가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보안장벽 건설에 매달려 왔다. 이집트 국경을 포함, 요르단 접경을 제외한 국경 전체에 보안장벽을 세웠거나 세우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와 불법입국, 밀수 등을 막기 위해 보안장벽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요아브 틸란 이스라엘 보안군 중령은 "지난해 에티오피아, 수단 등에서 밀입국한 사람이 1만6,000명에 달한다"며 "테러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값싼 임금을 받고 이집트 국경에 보안장벽을 건설하는 인부들 중에는 베두인족 알선업자를 통해 밀입국한 사람들도 있다. 이집트 접경에 보안장벽이 완성되면, 장벽이 설치되지 않은 요르단 국경이 밀입국자들의 우회 루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요르단 접경에도 보안장벽을 설치해 결국 국경 전체를 장벽으로 두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접경지역에는 1970년대에 보안장벽이 설치됐지만 2006년 헤즈볼라가 쏜 수천 발의 로켓을 막지 못했다. 이스라엘 군인들도 희생됐다. 보안장벽을 둘러친 가자지구에서도 수시로 로켓이 오간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건설 중인 748㎞ 길이의 보안장벽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 등으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안장벽 확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 내에서도 보안장벽이 '나약함의 상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27일 전했다.
국방분석가인 알렉스 피시맨은 지난달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인 예디오트 아하로노트에 기고한 글에서 "보안장벽은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라며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가시가 잔뜩 달린 동물처럼 변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겁에 질려 스스로를 장벽에 가뒀다"며 "이스라엘은 거대한 장벽을 가진 조그마한 국가가 됐다"고 했다.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는 "모든 보안장벽은 그때 그때 이유가 있어서 만든 것이지만 퍼즐처럼 모아놓고 보면 충격적"이라며 "보안장벽은 이스라엘의 정신이 병들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