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에서 지급되는 처방약 약제비가 병원을 통해 제약사나 약 도매상으로 지불될 때 병원들이 1~2년이나 약값 지급을 늦추는 관행을 철폐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약값 직불제를 추진한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이 같은 병원들의 의약품대금 지연지급 횡포는 의료계 리베이트(뒷돈) 유형의 하나라고 보고 약값 직불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보공단이 병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제약사나 약 도매상에 처방약값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복지부 이태한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약값을 늦게 지급하는 만큼 병원이 이자 혜택을 보고, 약값 자체가 제때 들어오지 않아 제약사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며 "직불제는 이런 리베이트 형태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전문약은 입원환자의 경우 병원을 통해, 외래환자의 경우 약국을 통해 제약사에 지급된다. 복지부가 의료기관 몇 곳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일부 병원은 건보공단에서 입원환자 약값을 받은 후 2년이 지나서야 약 도매상과 제약사측에 약값 대금을 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공단에서 약값을 병원에 지급하는 기간은 병원이 청구한 때부터 보통 1~2개월, 길어야 3개월 정도이다. 그런데도 병원측은 제약사에 약값 외상기간을 하염없이 늘리는 것이다.
2010년 신건 의원(당시 민주당, 현재 무소속)이 국내 제약사들을 통해 29개 국공립의료원 및 대학병원의 약값 지연지급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의약품 납품 때부터 제약사측에 약값을 지급하기까지 국공립병원은 평균 7개월, 사립병원은 평균 11개월 정도가 걸렸다. 전체 평균은 9개월이었으며, 최대 2년 2개월 후에 약값을 지불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조사에서 이들 병원들의 입원 약제비 규모는 1조7,000억원 가량이었는데, 제약사에 대금 지급을 늦추면서 얻은 이익을 이자 수익(예금은행 평균금리)으로 환산하면 약 350억원으로 추산됐다. 제약사들은 소송을 통해 약값을 받아낼 수는 있지만 의사들이 자사 약품을 처방해야만 수익이 나는 입장이어서 눈치만 보는 입장이다.
병원들은 경영상 어려움 때문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걸고 있지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금 지급을 미뤄 이익을 보는 것은 대표적인 불공정 관행이라는 비판이 많다. 복지부 정경실 의약품정책과장은 "경영상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리베이트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직불제 도입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추가 실태조사 등을 진행하고 검토를 거쳐 시기를 확정할 예정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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