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이 18일을 끝으로 28년간 해오던 돌고래쇼를 일시 중단했다. 국제 보호종인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불법으로 포획해 쇼에 동원해 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고, 이에 박원순 시장이 제돌이 방생방침을 밝힌데 따른 조치다. 돌고래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죽은 생선을 먹을 때까지 굶기는 등 동물학대를 한다는 동물보호단체들의 지적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대공원 측은 앞으로 시민토론회 등을 거쳐 돌고래쇼 폐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돌고래 쇼 논란은 말, 물개, 원숭이 등 다른 동물 쇼로까지 번지고 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 쇼는 단지 유흥을 위해 지각 능력이 있는 생명체를 혹독한 훈련으로 착취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해당 동물이 조련사들과 아무리 친밀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더라도, 동물 본래의 습성대로 살지 못한 채 인위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 과정 자체가 가혹 행위라는 설명이다.
반면 교육적 효과나 조련사와 동물의 관계 등을 근거로 동물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병훈 대한의사협회 고문은 "동물 쇼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동물 학대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과 동물 양쪽의 끊임없는 애정과 교감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제돌이를 다시 바다에 돌려보내는 것이야 말로 동물 학대라는 주장이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 반대
"혹독한 훈련으로 본능억제 자체가 가혹…약자위 군림하는 사회에 둔감 악영향도"
영화 '아미스타드'의 한 장면을 보면, 노예무역선에 실리는 노예들이 배에 오르자마자 무조건적으로 채찍질과 잔혹한 폭행을 당하며 짐짝 다뤄지듯이 이송된다. 이는 실제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노예들이 겪은 고통의 한 단면이었다. 그들은 왜 그런 일을 당해야만 했을까? 착취자들은 피착취자들의 자아를 박탈시키거나 공포에 떨게 하며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돌고래 제돌이를 훈련 후 바다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발표 이후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돌고래쇼가 생태체험교육이라는 주장도 있다. 동물을 비좁은 수조에 가두어 놓고 쇼를 시키며 생태교육이라 한다면 차라리 전자게임기에 정교하게 세팅된 고래키우기를 하는 것이 더 세밀한 생태관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생명체를 억압하고 군림하는 모습을 통해 어린아이들은 약자를 지배하는 사회에 둔감하게 적응하며 성장한다.
돌고래를 포함해 동물쇼가 전세계적으로 꾸준하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단지 유흥을 위해 지각 능력이 있는 생명체를 혹독한 훈련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동물들이 쇼를 하기 위해서는 조련사들과의 친화적 유대관계를 이루지 않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에만 관심을 기울이는데, 이는 타자에 대한 잔혹 행위에 동조하는 자신을 부인하기 위해 한 단면만을 보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돌고래는 야생에서 잡혀와 순치되기 위해 약 2주일 정도를 굶게 된다. 바다에서 산 생선만 먹고 살던 돌고래에게 죽은 생선을 먹도록 길들이는 것인데, 순치의 첫 번째 과정으로써 밥을 굶겨서 자신을 포기토록 만드는 것이다. 돌고래는 쇼하거나 훈련하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이다. 노역을 해야 만이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다. 1997년에 서울대공원에서 죽은 '고리'는 임신 중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받다가 사산을 하였고, 그 이후 밥도 거부하고 쇼를 기피하는 등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죽었다. 트래킹이나 쇼에 이용되는 코끼리들은 더 잔혹하게 다뤄진다. 원래 코끼리는 자기의 등에 누구도 태우지 않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한다. 하지만 혹독한 훈련을 통해 본능은 억제 당하는데, 코끼리의 본능을 억제시키는 훈련 과정을 '파잔'이라고 한다. 훈련이 어찌나 가혹한 지 파잔 기간 동안에 죽거나 정신 착란증에 빠지는 코끼리들이 절반은 된다고 한다. 훈련 도구로는 '꺼창'이라는 쇠꼬챙이가 사용되는데, 작은 꺼창 하나로 그 큰 몸집의 코끼리를 움직이게 하니 그 훈련이 얼마나 혹독할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이는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동물이 쇼에 나서기까지는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경험들로 순치되는 과정을 거쳐서 반복된 훈련을 통해 무대에 오른다. 쇼에 이용되는 동물들은 자신을 철저하게 박탈당한 후에야 훈련을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신대륙으로 끌고 와 길들이며 도구화시켜서 노역을 시킨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동물을 도구적 관점으로만 대하고 동물들도 고통을 느끼고 스트레스로 인해 심신이 피폐해 지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의 차이일 뿐이다. 동물 종에 따라서 그들에게 가해지는 가혹 행위의 방법과 수위가 다를 수는 있지만 동물이 본래의 습성대로 살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압력을 당해 인위적인 행동에 따르도록 하는 과정 자체가 가혹 행위에 해당한다.
쇼 하던 돌고래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면 적응하지 못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회의론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고래가 계속 쇼에 이용되거나 화학약품이 섞인 동물원 수조에 전시되는 것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훈련 후 방생에 부적합한 결론에 이를지라도 돌고래들은 바다에 설치된 시설에서 보호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야생의 돌고래들이 잡혀와 쇼에 이용되는 일들이 근절될 수 있다.
서울대공원의 돌고래쇼 관람객이 연간 100만 명이라고 한다. 80년대 중반부터 돌고래쇼를 해왔으니 돌고래들이 그동안 벌어준 돈을 따져보면 제돌이 방생 비용이 결코 억울할 일은 아니다. 늘 그래왔듯이 이익의 수혜자는 인간이고 고통부담의 감당자는 동물이었는데 8억 7,000만 원을 떼어 되돌려주는 것은 참으로 인간적인 처사 아닌가.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 찬성
"자연상태에 놔주지 않으면 다 학대인가… 인간과의 애정·교감 간과한 일방적 논리"
15년 전 이야기다. 서울 양재천에서 사람을 피하지 않고 먹이를 잘 받아먹는 신기한 너구리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철망으로 너구리장을 이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암놈 2마리 수놈 2마리를 잡아서 길렀다. 1년이 지나니 너구리굴에서 새끼 4마리가 태어났는데 그 중 2마리는 희귀한 회색너구리였다. 재롱을 잘 부렸다. 새끼 4마리에게 예방주사를 맞히고 아파트에서 길렀다. 너구리는 동네 사람,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너구리들이 모두 자라니 집에서 기르기가 곤란해졌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전화를 걸어 봤더니 당시 동물원엔 너구리들이 늙어 죽어서 한 마리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동물원 쪽에서 나와 너구리들을 보더니 잘 길들여져 사람들을 좋아한다며 데려가겠다고 해 모두 기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3년 전 불법 포획돼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쇼를 해 온 국제 보호종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제주 앞바다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예전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옛날 제국주의 시대처럼 신기한 동물을 잡아다가 구경시켜 주는 동물원 시대는 지나갔다. '동물을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세상과 우주와 생명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비전과 시민의 사랑을 받는 동물정책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박 시장이 제주 강정마을이라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동물 권리에 관심이 많아 '제돌이 방사'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아쉬운 대목이 많이 남는 결정이다.
우선 동물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엔 동의할 수 없다. 이처럼 동물을 자연 상태로 놔두지 않는 것을 무조건 동물 학대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내가 너구리를 키웠던 것도,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개를 기르는 것도 다 동물 학대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동물 쇼 중단은 물론 지금 동물원에 있는 모든 동물들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보는 동물 쇼는 모두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동물 학대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특정 동물과 해당 조련사 사이의 끊임없는 애정과 교감을 통한 결과물에 가깝다. 많은 사육사들이 동물을 길들이는 친화 훈련은 상호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제돌이 같은 돌고래는 지능이 매우 높은 개체다. 이런 돌고래와 함께 동물 쇼라는 일종의 예술을 완성할 때엔 양쪽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누구보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동물 조련과 사육 일을 맡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또 이렇게 길들여져 사람을 유난히 잘 따르는 동물을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낼 경우 동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성공률이 낮다는 위험을 감내하면서도 이미 인간과 몇 년간 함께한 제돌이를 다시 바다에 돌려보내는 것이 더 동물 학대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동물 쇼는 어린이들에게 주는 교육적 효과가 크다. 어린이들이 책에서나 보던 동물을 눈 앞에서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곳은 동물원밖에 없다. 돌고래 쇼를 비롯해, 홍학, 사자, 호랑이, 곰, 독수리, 원숭이, 물개 등이 참여하는 동물 쇼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교육용 교재다. 동물원은 또 멸종 위기의 야생 동물들을 보존하는 중요한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동물원이 없다면, 동물쇼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이런 사회적 기능은 어디서 담당할 것인가. 어린이들과 구경꾼들의 입장과 바꿔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육각형 벌집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헝가리의 수학자 페예시 토트는 "자연은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배우고 응용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동물 쇼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에게 정서적인 교육 효과를 주고 동물원이 희귀 동물을 연구·보호하는 기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 쇼, 나아가 동물원은 영원히 존속해야 한다. 국민 누구나 언제든지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면 더 다양한 동물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게 동물 쇼를 금지하는 것보다 시급한 문제다.
이병훈 대한의사협회 고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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