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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칼럼] 대학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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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칼럼] 대학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입력
2012.03.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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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을 번안한 연극 '아버지' 연출을 하느라 매일 대학로의 연습장에서 산다. 그런데 주인공을 맡은 이순재, 전무송 선생을 비롯해 40, 50대의 중년 배우들과 20,30대의 젊은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다보니 연습장에서 마치 대가족의 일상과 같은 풍경이 가끔 벌어진다. 젊은 배우들은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싶은데 어른들이 계시니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또 어른들이 연습 시간보다 30, 40분 일찍 와서 대본을 보고 준비를 하시니 모두들 연습실에 일찍 오는 경쟁이 벌어진다.

어쩌다 이야기판이 벌어져서 두 분의 젊은 시절 얘기가 나오면 모두들 빙 둘러 앉아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 얘기들이 젊은 배우들에게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이야기'다. 60년대나 70년대가 주무대이니 겨우 40, 50년 전의 일인데도 그 시절의 연극 풍경에 대해 너무도 신기해하고 낯설어한다. 그 중 젊은 배우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배고픔'에 대한 얘기다. 차비가 없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터벅터벅 걸어서 연습장에 갔다는 얘기, 안주 사먹을 돈이 없어 '카바이트 깡소주'를 마셨던 얘기, 흥행이 안 된 공연을 끝낸 뒤 출연료를 한 푼도 못 받고 울었던 얘기 등 수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부분이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얘기다. 어느 날 두 분과 비슷한 시기에 연극을 했던 원로 연극인이 오셔서 '호랑이 담배 먹던' 얘기를 한참 하시다가 그토록 힘겨운 환경 속에서 연극의 열정을 불태운 원동력이 '외로움'이었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모두들 웃으며 공감을 표했다. 왜 연극을 하는지 저마다 사연이 다르고 굶주림에 대한 느낌도 예전과 지금은 천지차이지만 '외로움'이란 단어는 세대를 뛰어 넘어 공감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그런데 이 외롭고 배고픈 연극인들이 대학로의 주인공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젊은 배우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가난한 연극쟁이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 그때 대학로의 주인공은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고 마로니에 공원이나 소극장 근처에서 밤새워 예술을 논하던 열정에 가득 찬 연극인들과 그들을 사랑하던 관객들이었다. 그런데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의 대학로 주인공은 상가와 음식점과 카페의 주인들과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손님들인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해가는 대학로의 화려함 속에서 연극인들은 소외감과 초라함을 느끼며 연습실과 극장을 들락거린다. 소극장을 운영하는 연극인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학로를 떠나 임대료가 조금 싼 성대 입구나 혜화동이나 성북동 쪽으로 옮긴다. 그래서 요즘은 그쪽으로 소극장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극장이 들어선 곳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뒤따르게 되는 법이니 몇 십 년 뒤에는 그쪽도 번화한 상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또 임대료가 오를 것이고 가난한 연극인들은 싼 곳을 찾아 그 곳을 떠날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파리의 몽마르뜨 거리나 뉴욕의 소호에서도 벌어졌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거나 연극을 하는 곳에 관객들이 몰리면 상가가 형성되고, 그 거리가 번화해지면 가난한 예술가는 떠난다. 이 현상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토론토대 비즈니스 및 창조학과 교수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와 창조계급> 이란 책에서 도시의 경제 발전과 화가, 연극인, 시인, 음악가, 디자이너, 영화인, 연예인 등 보헤미안의 수가 정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보헤미안 지수'라고 명명했다.

<타임> 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안 140인 중에 들 정도로 왕성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는 그의 연구는 가난한 보헤미안인 연극인들에게도 희망을 던져준다. 자신들의 예술 활동이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잘 살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자긍심도 선사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말의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과연 60, 70년대 선배 연극인들의 외로움과 배고픔이 오늘의 대학로를 만든 원동력일까. 아직도 대학로의 주인공은 연극인일까.

김명곤 동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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