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정부가 거래를 했으면 하는 게 있다. '교원성과급'과 '교무행정업무전담직원'을 주고받는 거래다. 교사는 교원성과급을 내놓고 정부는 교무행정업무전담직원 5만 명을 고용하는, 일종의 빅딜이다.
빅딜이 성사되면 학교를 크게 바꿀 수 있다. 업무 중심의 학교를 교육 중심의 학교로 바꿀 수 있다. 무엇보다 학교의 기본 조직체계를 수업(교육) 중심으로 개혁할 수 있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얘기했듯이 우리나라 학교의 조직체계는 교육이 아니라 업무를 토대로 해서 이루어져 있다. 교육활동에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5만 명의 인력으로 교무행정업무를 전담케 하면 이러한 조직체계를 완전히 개편할 수 있다. 물론 교사들이 교육이외의 업무에서 벗어나 교육에만 전념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학교교육을 좋게 만드는 것이라면 정부의 예산을 투입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업무전담직원의 고용은 정부예산을 투입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부라 해도 1조 수천억 원의 예산을 선뜻 투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상당수 국민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좋지 않다. 게다가 대다수 국민은 업무 중심의 학교를 교육 중심의 학교로 바꾼다는 프레임으로 상황을 보지 않는다. 단순히 교사의 잡무를 줄여준다는 업무경감의 프레임으로 상황을 본다. 그래서 방학도 있고 퇴근도 빠른 교사의 업무를 무엇 때문에 줄여 주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국민과 정부를 움직이려면 교사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다행히 교원성과급으로 업무전담직원 5만을 고용하는 것은 교사에게 손해만은 아니다.
우선 교육이외의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이것은 교사의 근무여건이 확연히 좋아지는 것이다. 업무(잡무)에서 벗어나 오로지 교육에만 전념하는 것은 교사들이 오랫동안 가져온 간절한 소망이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교원성과급제도를 폐지하게 된다. 교원성과급제도는 처음 도입될 때부터 교사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제도다.
빅딜은 교사, 정부, 국민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윈윈 게임이다. 물론 교사로서는 경제적으로 손해다. 하지만 업무(잡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고, 매년 교사들을 불쾌하게 만들던 교원성과급제도를 없앨 수 있다. 정부는 예산 사용의 부담 없이 학교교육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국민들은 추가적인 세금 부담 없이 자녀들에게 더 좋은 학교교육의 혜택을 받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5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교원성과급제도를 폐지하면 교사들 간에 서로 학생을 잘 가르치려 하는 경쟁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기우다. 원래부터 교원성과급은 그런 경쟁을 불러오지 않았다. 교원성과급제도는 학교에 그런 경쟁을 불러올 수 없다.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설학원도 상당부분 그렇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학원의 보수체계는 꽤 평등하다. 강사들 간에 능력 차이가 있어도 보수에는 차별을 두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대부분의 종합반학원은 강의능력은 물론이고 나이나 경력조차 따지지 않고 보수(시간 당 강의료)를 동일하게 지급한다. 강의능력에 따라 강의료에 차별을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명문 학원의 상당수가 그런 평등한 보수 체계를 취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학교에서 교원성과급제도가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실제로 교원성과급 제도가 발생시킨 것은 교사들 간의 교육 잘하기 경쟁이 아니다. ABC 등급을 정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벌이는 교사들 간의 소모적 갈등이다. 성과급제도를 폐지한다고 학교교육이 나빠질 일은 조금도 없다.
교사ㆍ교원단체는 정부에게, 반대로 정부는 교사ㆍ교원단체에게 '빅딜'을 제안해야 한다.
이기정 서울 북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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