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무슨 소린지 솔직히 납득이 잘 안 된다. 다만 여ㆍ야 정치권 모두 경제를 추락시키고 극심한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초래한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을 새 지향점으로 그 말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 '건강하고 공정한 국민경제' 정도를 염두에 둔 것쯤으로 짐작할 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비슷한 고민의 결과물을 '굳건한 경제(an economy built to last)'로 표현했다. 수익 추구 일변도의 월스트리트 식 경제를 넘어 토지처럼 굳건하게 국민의 삶의 터전이 되는 새로운 경제를 일구겠다는 얘기다.
사실 용어가 대수로운 건 아닐 것이다. 관건은 장기적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믿음직한 청사진의 유무일 테니까.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내놓은 공약을 보면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경제개혁의 합리적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여전히 혼돈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정부와 함께한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새누리당은 그렇다 쳐도, 'MB노믹스'와 신자유주의 타파의 주역을 자처하는 민주통합당(민주당)의 공약에서도 그런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석 달 전 구 민주당, 친노ㆍ시민세력, 한국노총 등이 힘을 합쳐 새 출발을 선언한 이래 당내 세력 판도의 격변 속에서 민주당의 정책 혼선은 이미 예고됐는지 모른다. 당장 공천학살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구 민주계가 퇴조하고, 친노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비례대표 1번이 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자 노동운동가인 전순옥씨에게 돌아갔고, '통일의 꽃' 임수경씨가 21번을 받았을 정도니 보수야당이란 말은 추억 속에나 남게 됐다.
세력 판도의 격변만큼 정책 좌표 설정에도 적잖은 진통을 겪었음이 분명하다. 재경부 장관을 역임한 최고의 정책통이지만 민주당의 새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천된 강봉균 의원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여ㆍ야가 정권을 잡는 데만 혈안이 돼 경제 안정과 발전기반을 위협하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반면 유종일 당내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은 오히려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정책이 약화했다"며 "민주당이 경제민주화 정책을 잘 실천하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이런 충돌을 겪으며 나온 민주당의 핵심 경제공약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재벌개혁만 해도 최종 공약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및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을 골자로 꽤 순화됐지만 지도부 경선 당시 일각에서 나온 재벌 해체론 같은 급진적 입장이 어떻게 정리됐는지는 여전한 의구심의 대상이다.
물론 대내적으로 재벌 일가의 부당한 기업 지배나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은 적절한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권정당이라면 글로벌 경쟁체제 속에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세계 일류기업을 일군 우리 기업의 역동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입장도 혼선을 거듭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초 전면 폐기론을 내놨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무효화론'을 거론했고, 나중에 전면 재재협상론으로 조정했다. FTA 자체가 선택의 여지가 크게 없이 주어진 대세였다는 점과, 국가적 대외신뢰도를 감안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한 진지한 대처의 움직임은 여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는 러시아 혁명의 이론적 근거와 방향을 제시한 레닌(1870~1924)의 테제 팸플릿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최근 이 팸플릿의 제목이 연상되는 신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를 냈다. 이 책에서 그는 국내 진보세력에 대해 "대기업 해체는 국내외 자본투자가나 투기세력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며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질서에 휩쓸렸던 노무현 시대의 '진보의 착각'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혼돈을 극복하고 신뢰받을 만한 미래의 수권세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무엇을> 무엇을>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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