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노령화 사회의 비극은 심각한 듯하다. 한국 노인만큼 불행하고 불쌍한 노인들이 또 있을까? 한국 노인들의 비극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때문인 듯하다.
첫째는 빈곤과 양극화이다. 참혹하게 진행 중인 양극화가 사회의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니 당연히 노인계층이 그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도 부족한 일자리와 복지 때문에 죽어나가는 판이니, 노인들에게 돌아갈 몫은 절로 줄어든다. 분명 그들은 복지의 '후순위'일 것이다.
그런데 말하자면 '노령화의 계급화' 같은 현상도 빠르게 번져나가는 듯하다. '늙음'도 계급ㆍ계층에 따라 확연히 다른 문제다. 실질적인 건강과 외모를 결정하는 것은 나이 자체가 아니라 소득이나 자산인 것이다. 또한 돈 있는 노인은 자식들에게서 가식적인 효도라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노인들은 사회와 가족들로부터 냉정하게 버려진다. 2010년엔 독거노인의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한다. 또한 한국 노인 자살률은 10년 사이에 2배로 늘어났고 그야말로 단연 세계 1위를 차지한다. 74세 이하 노인의 자살률은 81.8명으로 일본ㆍ미국보다 4~5배 가량 높으며 특히 농촌과 지방 남자 노인의 자살률은 끔찍할 정도라 한다.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또는 신병과 외로움 때문에 자살하는데, 그 이유들의 교차점에 빈곤이 있는 것이다. 한국이 노인 공경과 효의 나라라는 허울과 거짓말은 이제 벗어던져야겠다. 아니고서야 저렇게 많은 노인이 버려지고 자살할 리가 있나? 한국식 가족주의만큼 '속빈 강정'격인 게 있을까.
둘째로 한국 노인을 힘들고 외롭게 만드는 건 정치적ㆍ문화적 세대차이일 것이다. 오늘날 노인들은 '막말녀', '막말남'들 외에도 언제 어디서나 '싸가지' 없는 젊은 녀석들과 맞닥뜨릴지 모른다. 전반적으로 노인들은 존경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돈이 있는 노인도 그렇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사이의 문화적 격차가 점점 극심해지는 데 그 한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미디어와 의사소통방법, 사회 정치적 경험이 모두 크게 다르지만 특히 정치적 견해도 한 몫한다. 이를테면 60대 이상 노년 세대는 한사코 보수와 '수구'의 입장에서 투표한다. 사실 그들 중 상당수는 '전후 세대'에 속하면서도 여전히 냉전과 반공이데올로기에 매어있다. 또한 노년 세대 중의 일부는 스스로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보수'라는 미명에 속아 '복지'에 반대하고 나선다. 그래서 노년 세대의 이념과 정치행위를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도 존경하기도 어렵다.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의 진정성과 노력에 대해 젊은 세대는 '희비극'을 느낄 뿐, 존경심을 갖고 바라보지 못한다. 10~20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노인들을 직접 가정이나 생활세계에서 만나고 부양해야할 30~40대가 60대 이상의 정치성향과 문화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은 중요하다. '민주화' 시대의 주역들인 아들딸 세대와 부모 세대 사이에 큰 인식의 '넘사벽'이 있어 소통의 장애가 된다.
한국 노년 세대가 좀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복지 수준이 올라가서 노인 빈곤과 소외에 대한 관심이 배전되어야 하겠고, 노인 계층과 젊은 세대의 문화적ㆍ정치적 격차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총선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번에도 4월 11일의 선거를 앞두고 많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들은 또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을 맞고 있을 것이다. 정치 문제 때문에 '혈압 오르는' 부모들도 많을 것이다.
세대 간의 극심한 투표 성향의 차이가 좀 줄어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해 가난한 계층의 노인들이 부자 정당에 투표하는 자해적인 상황이나, 허탈한 표정으로 '우리 부모님 또 새벽부터 또 1번 찍고 오시더라'는 말을 하는 아들ㆍ딸들을 덜 봤으면 좋겠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부모세대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정말 다시 생각할 부분도 있고, 아들ㆍ딸 세대에게도 새로운 차원의 '효도'가 요청되는 것이겠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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