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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비선조직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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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비선조직의 저주

입력
2012.03.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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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몸통선언’ 기자회견 잔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 인멸 지시의 몸통은 자신이며 더 이상의‘윗선’은 없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국기문란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음에도 국민 앞에 뉘우치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호통치고 야당을 훈계조로 비난했다. 청와대 내에서조차 “낮술 먹은 게 아니냐”는 힐난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기자회견 자청 이유를 “더 이상의 진실 왜곡을 막기 위해”라고 했지만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유력 보수언론은“내가 몸통”이라는 그의 주장을 ‘깃털의 자백’이라고 비틀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작심하고 한 기자회견은 몸통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만 키운 결과가 됐다.

이런 정도의 상황 판단도 안 되는 인물이 정권 출범 초부터 2년 넘게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500만 표 차 승리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실패의 길을 걸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전 비서관은 2009년 10월 대통령 보고 일정 조정 문제로 다른 비서관실을 찾아가 발칵 뒤집어 놓은 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 전에도 청와대 내에서 비슷한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상식대로라면 벌써 중징계를 받고 청와대에서 쫓겨났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그는 2010년 7월 민간인 사찰 논란이 불거질 때까지 자리를 잘 지켰다. 청와대가 함부로 내치지 못할 대단한 배경이 있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몸통은 아닐지라도 단순한 깃털도 아니다. 그가 지휘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여러 정황 상 정권 보위를 위한 비선조직이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경찰청 사직동 팀이나 노무현 정부의 총리실 암행감찰팀 등 역대 정권에서도 유사한 조직이 있었다. 대통령 친인척 등과 관련된 청와대 하명 사건을 내사하고 공직자 비리를 자체 조사해 청와대에 보고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휘를 받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엉뚱하게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아래 있어 일탈에 대한 통제가 힘들었다.

이 전 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영일ㆍ포항 출신이다. 이른바 영포라인이다. 이 전 비서관의 심복 역할을 한 최종석 전 행정관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핵심 멤버들도 ‘영일만의 친구’들이다. 이 전 비서관의 윗선도 이 지역 출신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은 타당하다. 특정 지역 출신이 모인 조직은 집단사고의 함정에 쉽게 빠진다. 사정업무를 담당하는 비선조직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기 마련이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거리낌 없이 민간과 정치권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사찰을 한 이유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활동을 개시한 시기는 2008년 7월, 광우병 쇠고기 촛불 시위로 이명박 정권이 출범 5개월도 안 돼 심각한 위기에 빠졌을 때다. 비선조직을 만들어 정권 위협 세력을 견제하고 제거하고자 하는 유혹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은 “어설픈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간혹 있다”며 “정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민간인 사찰 사건을 일부 인사의 빗나간 충성쯤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 청와대와 검찰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증거 인멸 상황까지 드러났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사건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법무장관 등 정권 핵심 인사들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역대 정권의 비선조직들은 예외 없이 정권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이명박 정권은 거기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한층 더 퇴행적인 비선조직을 가동하다 결국 사단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총선, 대선 정국을 맞아 정권의 힘이 빠진 상황에서 이 사건은 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참으로 무서운 정권 비선조직의 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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