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40%를 넘으며 신드롬을 일으킨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가장 큰 성과라면 단연 배우 김수현(24)의 발견이다. 아직 소년 티가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이지만 호령이 어색하지 않은 은근한 카리스마를 지녔고, 매력적인 외모 못지않게 흡입력 있는 연기력까지 갖췄다. 지난해 청소년들을 겨냥한 드라마 '드림하이'로 주목 받은 그는 '해품달'에서 슬픔을 간직한 왕 이훤 역할로 전 세대에 걸쳐 인기를 얻어 스타덤에 올랐다. 안타를 때린 뒤 두 번째 타석에서 한방에 홈런을 쳐내 바로 톱 클래스로 뛰어오른 격이다.
20일 만난 김수현은 화면보다 더 작아 뵈는 얼굴에 영민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훤을 연기한 여진구 흉내를 내며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또래 배우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내공이 엿보였다.
-드라마 끝나고 뭐했나. 자고 일어나보니 스타라는 말이 실감날 것 같은데.
"시청률 개념이 없었는데, 주위에서 40%를 넘으면 국민 중에 얼마가 본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좀 실감이 났죠. 촬영 현장에 아기 업고 오신 어머니들도 많았고 '드림하이' 때와는 좀 달랐던 거 같아요. 집에서 늘어지게 자고 싶었는데, CF 찍고 이런저런 일정을 소화하느라 아직 만족할 만큼 못 잤어요.(웃음) 한 14시간은 자야 하는데."
그렇게 자면 허리 아프겠다고 하자 "21시간을 잔 적도 있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게 장난꾸러기 남동생 같다. 원래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는 그에게 한창 촬영할 때 뭘 가장 하고 싶었냐고 물으니, 평범한 제 나이 청년들처럼 영화 보고 노래방 가고 하는 거란다.
-배우는 역할 따라 간다는데 현장에서 왕 대접을 좀 받았나.
"특별히 왕 대접은 없었어요. (내관 역할을 맡은)정은표 선배님만 왕처럼 대해주셨죠. '원래 내시들이 왕이랑 대본도 맞춰준다'면서 항상 대본 맞춰주시고 얘기도 많이 나눴어요. 대기실에 들어가면 김영애 선생님, 전미선 선배님, 영상대감 등 F4 선배님들께 인사를 드리는데, '우리 수현이는~'하면서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힘이 됐어요."
-촬영 현장에서 독특한 발성과 행동을 한다고 들었는데.
"아아아~ 뭐 이런 소리를 내는 건, 목 푼다기보다는 다른 뜻이 있어요. 제 구역을 만든달까, 강아지들이 오줌 싸는 것처럼.(웃음) 내가 여기 있다 알리고, 또 주변 사람들이 쟤 있구나 뭐 이러면서 제 공간을 만드는 거죠. 거기선 제가 편하게 놀고 연기할 수 있도록."
운도 따랐지만 찾아온 기회를 제대로 잡았다. '해품달'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스토리에 일부 출연자들의 연기력 논란까지 시련도 많았고, '한복 입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픽션 사극의 한계도 명확했다. 김수현은 때로는 여심을 자극하고 때로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끌어내는 극의 중심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극중 역할과 비교하면 실제 성격은 어떤지.
"'드림하이'나 '해품달', 여름에 개봉할 영화 '도둑들'까지 다 일편단심이더라고요. 거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내가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겉으로는 순정남이고요, 안으로는…. 아, 이러면 진짜 나쁜 남자인가?(웃음). 아니에요."
-중전과 연우를 한번에 휙 넘기는 장면이 화제였다.
"좀 걱정을 했죠. 얼굴은 어려 보이는데 막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안 어울리고 무례해 보이진 않을까 해서. NG도 좀 났어요. 들다가 쿵 했던 적도 있고. 하하. 7,8회쯤에 엎어치기를 했는데. 아유, 좋아들 하시더라고요. 감독님도 좋다면서 나중에 또 '그때 했던 거 있잖아. 그런 식으로 해보라'고 하셨어요.(웃음)"
-인상 깊은 한 장면을 꼽는다면.
"정말 인상 깊은 게 있었죠. '아, 내가 이제 이런 대사를 하는구나' 했던. 그 엎어치기를 하면서 '좋소. 내가 중전을 위해 옷고름 한 번 풀지'라고 말하던 장면."
수위가 좀 셌다는 말에 "그러고는 옷고름 안 풀었으니까, 뭐" 하며 능숙하게 넘기는가 했더니, 아역의 열연을 얘기하면서 깔깔대고 여진구 흉내를 내는 게 한없이 천진난만해 보인다. "진구는 '자이언트' 때 함께 했는데, 어느새 키도 훌쩍 크고 변성기가 지나면서 목소리도 걸걸하고 무거워졌어요. 음음, '형, 오랜만이에요' 어때요 똑같죠?"
-어머니의 권유로 연기하게 됐다고 들었는데.
"고1 때였어요. 제가 당시 목표가 굉장히 흐리멍덩했어요. 또렷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러다 어머니가 연극 한번 해보라고 권하셨는데 무대에 선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요즘엔 어머니가 달려 나와 반긴다고 들었다. 음악 하는 아버지 김충현씨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어머니는 진짜 달려 나오세요. 하하. 현관에서 신발 벗고 방에 들어갈 때까지 옆에 꼭 붙어서 '밥은 먹었니' '어디 아픈데 없니' 하시고. 아버지는 '세븐돌핀스'라고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한 그룹 보컬이셨죠. 가족끼리 노래방에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 앞에서 노래는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김수현의 이상형을 궁금해하는 여자들이 많다.
"음, 저랑 잘 어울리는 여자요. 같이 있으면 그림이 예쁘고(웃음), 남들에게서 '아 그래 저 둘은 진짜 만나야 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많은 여자를 만나봐야 알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중앙대 연극영화과 09학번인 그에게 캠퍼스의 낭만도 있지 않느냐 물으니 "요즘은 인터넷도 무서워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기하는 게 재미있나. 닮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촬영장 분위기나 연기도 재미있지만, 촬영 들어가기 전이 정말 좋아요. 한참 스트레스 받고 골치 아플 때. '해품달'에서 아역들 찍을 때 한달 쯤 준비하면서 '아 살아있구나'하고 느꼈어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서 악역을 한 크리스토프 왈츠처럼 연기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보고 있으면 빠져들고 궁금해지는 그런 힘을 가진 배우요."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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