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밀과 쌀, 평생 농사 경험으로 무장한 할머니 농민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지리산 작은 마을에 투자하세요."
계좌당 30만원을 투자하면 지리산 둘레길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미리의 제철 유기농산물과 농산물 판매 수익금에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배당 받을 수 있는 투자상품이 생겼다. 6년 전 전남 구례로 귀촌 한 웹디자이너 권산(49)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을 통해 내놓은 '맨땅에 펀드'가 그것이다.
맨땅에 펀드는 오미리의 논 2,000평, 감나무밭 1,000평, 각종 채소류 밭 1,000평을 일구는 할머니 농민 5, 6명이 펀드 매니저고, 베테랑 농부 지도위원 2명까지 가세한 초유의 펀드 상품이다.
농촌에 살지만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권씨는 구례로 자주 여행을 오다 이곳의 자연과 마을인심에 푹 빠졌다. 내친 김에 권씨는 2006년 구례군 사도리 상사마을에 정착했고 그 때부터 차로 10분 거리인 오미리에 사무실을 차려 두 마을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펀드도 마을에 대한 애정 때문에 구상했다. "오미리 마을 전체 주민 약 50명 중 70%가 70대 이상인데 과연 어떻게 마을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지리산닷컴을 통해 유기농 쌀, 밀, 감, 청국장 등 마을 농산물을 직거래해왔고 이 참에 펀드까지 만들게 됐죠."
맨땅에 펀드를 통해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는 직거래 유통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게 권씨의 포부. 또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 고령의 마을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뜻도 있다. 권씨는 "혼자 사는 이곳 할머니들은 농사와 식당일 외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며 "투자금이 다 모이면 농지를 계약하고 이들을 우선 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할머니들이 바로 맨땅에 펀드의 펀드 매니저가 된다.
맨땅에 펀드에 가입하면 철마다 일정 분량의 유기농산물을 제공 받을 뿐 아니라 정직한 농민과 작은 규모의 농촌을 살리는 기회까지 덤으로 얻는다. 다만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수익률은 보장이 안 된다. 권씨는 "농사 자체가 하늘의 뜻인지라, 거기다 농산물 시세도 한미FTA 같은 사회적 여건변화 때문에 예측하기 어려워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권씨의 이러한 설명에도 지리산닷컴 회원들의 호응은 뜨겁다. 펀드 출시 이틀 만에 투자자가 50명을 넘었다. 목표 인원의 반을 채운 셈이다.
권씨는 "앞으로 '맨땅에 펀드 함양', '맨땅에 펀드 태백', '맨땅에 펀드 완도' 같은 게 전국에 우후죽순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을 하냐고요? 작은 시골 마을 농부들이 큰 도시의 봉급생활자에게 인간적인 식재료를 공급하고, 봉급생활자들도 자신의 밥상을 책임지는 농부를 알 수 있으니까요. 밥상을 매개로 관계를 맺는 거죠. 서로 얼굴을 아는데 농부가 농약을 마구 치고, 도시 사람들이 농촌에 무관심할 수 있을까요?"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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