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23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인규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등 4명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에 대한 수사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잇단 폭로로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듯하던 수사의 줄기가 서너 가지로 압축되면서 핵심을 찾아낸 모양새다.
이틀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던 장씨는 25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증거인멸과 관련된 사항과 (나에게 건네졌던) 돈 흐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 전 비서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도 그가 기자회견을 통해 증거인멸을 지시한 '몸통'이라고 스스로 밝힌 만큼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절차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이 실제 이 사건의 몸통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만큼, 그 윗선을 찾아내는 것이 최대 관심사가 됐다.
장씨가 받았다고 폭로한 돈의 흐름을 추적하다 보면 증거인멸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이 나올 수도 있다. 검찰이 지난해 8월 이 전 비서관의 지시를 받고 장씨에게 2,000만원을 건넨 공인노무사 이모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씨는 아직까지는 전달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은밀한 돈 거래를 중개할 정도의 위치라면 돈이 전달된 경위와 출처에 관해서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2010년 수사 당시 총리실 인사들만 기소해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청와대 개입 의혹을 밝혀내는 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가장 확실한 연결고리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 중 280만원을 매월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장씨의 폭로다. 장씨에게 청와대에 대한 돈 상납 관행을 인수인계한 것으로 알려진 장씨의 전임 김모 주무관이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것도 장씨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 보인다.
증거인멸과는 상관 없는 이인규 전 지원관의 자택이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장씨도 "이 전 지원관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특별히 진술한 것이 없는데 압수수색을 당해 다소 놀랐다"고 밝혔다. 검찰이 자체 판단에 따라 사찰 부분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한 것 아니냐는 신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장씨는 이날 통화에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나름의 평가도 내놓았다. 그는 이 전 지원관을 "허수아비 국장"이라고 했다. 조직의 수장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지고 민간인 사찰 부분과 관련한 죗값을 치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은 윗선과 비교하면 피해자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지원관은 불법사찰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2010년 11월 1심에서 징역1년6월, 지난해 4월 항소심에서 징역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후 출소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반면 장씨는 이번 사건이 다시 불거진 이후 행방이 묘연한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에 대해서는 "실권을 장악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기관 사람들을 대할 때면 상당히 권위적이고 고압적이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가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진 전 과장은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팀의 사찰 내용을 취합해 청와대에 보고할 페이퍼를 작성하는 등,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과정 전반을 소상히 알고 있을 '키맨'으로 알려져 있다.
장씨는 진 전 과장이 진실을 밝히지 않고 아직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대해 "진실이 드러날수록 죄가 더 많아져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매우 비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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