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아끼고 사랑했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을 그림으로 만나는 책거리 특별전이 용인의 경기도박물관에서 21일 시작됐다.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라는 부제가 달린 이 전시는 조선시대 궁중 책거리와 민화 책거리에 오늘날 미술 작가들의 책거리까지 50여 점을 모았다. 국내 여러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 작가들이 작품을 내주었다.
책거리는 일거리, 이야깃거리처럼 책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책가(冊架), 즉 서가와 같은 가구를 그린 책가도가 있다. 엄밀히 말해 책가가 없으면 책가도가 아니지만, 책거리는 책가가 있든 없든 책이 중심이면 책거리다.
조선의 책거리는 학자 군주로 문예부흥의 중심에 섰던 정조가 창안했다. 중국 청대의 다보격(多寶格ㆍ여러 보물을 얹어 놓은 시렁)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궁중 화원들에게 그리게 했다. 정조가 집무실인 창덕궁 선정전의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 병풍을 두고 좋아라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궁중에서 태어난 책거리가 민간으로 흘러 나오면서 민화 책거리도 유행했다. 형식이 엄정하면서 호사로운 궁중 책거리와 달리, 민화 책거리는 훨씬 자유 분방하면서 소박한 멋이 있다. 복숭아 석류 등 다산을 상징하는 과일이며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 등 온갖 꽃에 용과 사슴 등 상서로운 동물까지 두루 그려 넣어 행복과 출세를 비는 것도 민화 책거리의 특징이다. 반면 궁중과 상류층의 책거리에는 값비싼 중국 도자기와 골동품이 많이 등장한다. 이 물건들은 사신들을 수행해 중국을 다녀온 역관들이 가져온 것으로, 당시 조선 상류층에 유행했던 중국 취향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5부로 구성됐다. 조선 사람들의 책 사랑을 보여주는 조선 후기 풍속화, 근대의 초상화와 사진 등으로 시작한다. 자리를 짜는 부부 뒤에서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김홍도의 풍속화에서는 자식이 책을 읽고 공부해서 출세하기를 바라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어 궁중 책거리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현존하는 책거리 중 작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 된 그림인 장한종(1768~1815)의 책가도를 비롯해 조선시대 최고의 책거리 화가로 꼽히는 이형록(1808~1871 이후)의 걸작 3점, 창덕궁과 운형궁 등 왕실에서 사용했으리라 짐작되는 궁중 책거리를 전시한다. 이형록은 3대째 책거리 그림으로 이름을 날린 궁중화원 집안 출신인데, 작품 속에 자기 이름을 새긴 인장을 보일 듯 말 듯 넣은 것이 재미있다.
3부는 중국 서화와 골동품을 열심히 수집했던 조선 상류층의 취향을 보여주는 그림을 모았다. 한양의 광통교 주변 종로 거리에는 이러한 중국제 물건이 즐비했다고 한다.
민화 책거리를 모은 4부는 그림에 깃든 여러 상징을 해독하는 재미가 있다. 온갖 상서로운 과일과 꽃, 동물을 그려 넣은 뜻을 헤아리다 보면 옛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5부는 전통 책거리가 오늘날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유화, 팝아트와 사진, 조각과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정성옥 김선정 김광문 김민수 임수식 최은경 등 13명의 작가들 작품을 모았다. 전시는 6월 10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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