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재력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홍콩 행정장관 선거가 권력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 신화통신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25일 홍콩 행정장관 선임 투표에서 렁춘잉(梁振英) 전 행정회의(홍콩정부자문기구) 의장이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렁 당선자는 이날 선거에서 1,193표 가운데 689표를 얻었다. 선전할 것으로 예상됐던 헨리 탕잉옌(唐英年) 전 홍콩 정무사장(司長·정무 총괄 최고위 행정직)은 285표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렁 당선자는 중국정부의 임명을 거쳐 홍콩특별행정구의 최고 통치자인 제4대 행정장관으로 7월 1일 취임한다. 임기는 2017년 6월 30일까지다.
시 부주석의 정치적 승리
이번 선거는 중국의 차기 주석이 될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과 아시아 최고의 갑부 리자청(李嘉誠ㆍ홍콩명 리카싱) 청콩실업 회장의 지지 후보가 엇갈리면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시 부주석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리 회장이 탕 전 정무사장을 계속 지지함에 따라 렁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특히 시 부주석은 지지 후보가 당선돼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다만 탕 후보가 혼외정사와 호화 주택 불법 개조 등의 추문에 휘말려 스스로 무너진 측면이 있는 만큼 덩 후보의 승리를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중앙정부 예속 가속화
전반적으로는 중앙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렁 당선자는 기본적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성공하기 위해 홍콩이 중국의 정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선 과정에서 중국의 지지가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도 그는 잘 알고 있다. 반면 중국의 눈치를 보다 보면 언론, 집회, 결사 및 시위의 자유 등 기본권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적잖다.
가난한 경찰의 아들
렁 당선자는 1954년 홍콩에서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경찰이었지만 워낙 가난했던 탓에 어린 시절을 경찰숙소에서 보낸 적도 있다. 홍콩이공(理工)학원을 졸업한 뒤 전문 측량 기사로 일하다 영국으로 유학, 웨스트잉글랜드대에서 상업관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홍콩으로 돌아와 다국적 부동산컨설팅 회사인 DTZ의 아시아ㆍ태평양 회장을 맡았다. 1985년 홍콩기본법 자문위원으로 정치와 관계에 입문한 뒤 1996년 홍콩임시입법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선거기간 동안 중앙정부와의 협력을 강조하며 공공주택 건설과 빈곤층 지원 확대 등 친서민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8만5,000채의 집을 공급, 홍콩 시민 70% 이상이 10년 안에 자기 집을 소유하는 ‘8만5,000 계획’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실제로 추진할지가 관심사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