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문학사상 독보적이고 이채로운 작가 이상(李箱ㆍ1910~1937). 이상 연구의 권위자인 권영민(64) 단국대 석좌교수가 <이상 문학의 비밀 13> (민음사 발행)을 펴냈다. 이상의 문학과 생애를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이지만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쟁점을 13개 질문으로 정리하고 해설한 책이다. 권 교수는 2009년 펴낸 <이상 전집> (전 4권)이 연구자를 위한 정본(正本) 확정 작업이었다면, 이번 책은 일반인이 이상 문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썼다고 말했다. " <이상 전집> 이 봄에 나왔는데 그 해 연말까지 3판을 찍었어요. 이상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그만큼 높더군요.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 필요하겠다 싶어 2년 동안 집필했습니다." 이상> 이상> 이상>
'이상은 왜 동경행을 택했는가'(1장) '('삼사문학'은) 이상의 추종자인가 비판자인가'(5장) '이상에게 폐결핵이란 무엇인가'(6장) '이상은 왜 백부의 집에서 자라게 되었는가'(10장) '기생 금홍, 거리의 여인? 혹은 팜 파탈?'(11장) 등 13가지 질문(각 장의 부제) 중 다수가 이상의 신상에 관한 물음이라는 점이 이 책의 눈높이를 보여준다. 작품에 곧장 파고들기보다는 일반 독자에게도 친숙한 전기적 사실을 우회해 이상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한 것.
첫 장은 이상이 스물여섯에 갑자기 도쿄에 건너가 이듬해 죽음을 맞은 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다각적인 자료 분석을 통해 그의 도쿄행이 그 직전 결혼했던 변동림과의 불화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상이 꿈에 그리던 도쿄에 갔다가 환멸 속에 죽음을 맞았다는, 다분히 낭만적인 기존 해석과 사뭇 다른 설명이다.
이상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다룬 10장은 저자의 실증적 연구가 거둔 개가다. 권 교수는 이상의 부친ㆍ백부의 제적등본,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 당시 학적부 등 각종 발굴 자료로 중요한 사실들을 밝힌다. 예컨대 이상이 어릴 적부터 백부 집에서 자라고도 양자가 되지 못해 후일 재산 분쟁까지 겪게 된 것은 백부가 첩의 아들을 호적에 올렸기 때문. 이상이 자신의 성장기를 '공포의 기록'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는 것이 권 교수의 판단이다.
이상에 대한 당대의 평가가 궁금하다면 5장을 보면 된다. '삼사(三四)문학'은 말하자면 이상의 팬클럽이다. 그의 연작시 '오감도'가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연재 중단됐던 1934년에 연희ㆍ보성전문학교 재학생을 주축으로 창간된 전위적 문학동인지로, 그 이름부터가 오감도가 탄생한 해를 기린다는 의미다. 이상은 기성 문단이 철저히 외면했던 이 동인지에 작품을 싣는 등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했고, 도쿄에 가서도 유학 중인 동인들을 만나는 등 죽을 때까지 교류를 이어갔다.
작품 분석에 초점을 맞춘 글 중엔 이상 문학과 영화와의 관계를 묻는 9장이 흥미롭다. 그의 소설 '지도의 암실' '동해' '실화' 등은 각각 '러브 퍼레이드' '만춘' '만하탄 야화' 등 1920, 30년대 국내 상영됐던 미국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결말부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 당대의 리얼리즘 작풍에 정면 도전한 그의 글쓰기 전략의 일부를 직접적으로 밝혀낸 셈이다. 이상이 1931년 건축 전문지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28편의 일본어 시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위시한 물리학ㆍ수학 이론을 동원해 해독한 2장은 문학평론가로서 저자의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이상 문학을 말놀이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7장도 흥미롭다.
권 교수는 "기호, 도표를 텍스트 속에 끼워 넣고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여긴 사람은 당대에 이상밖에 없었다"며 "사물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 그 창조적 상상력이 이상 문학이 지닌 현재적 가치"라고 평가했다. 지난 23일 고별 강연을 마지막으로 서울대 교수직에서 명예퇴직한 그는 "문학에 대한 관심을 사회문화적 담론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로 작가와 독자의 대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소설가 김연수씨가 참가하는 첫 행사의 주제는 다름 아닌 이상. 그의 기일인 다음달 17일에 열린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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