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 아이를 닮았을 것.”
딸만 둘을 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3일 한 흑인 소년에게 깊은 동질감을 표시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대통령의 부성애를 자극한 이 소년은 지난달 동네 자율방범대원의 총에 맞고 숨진 트레이본 마틴(17)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마틴의 사망 경위를 둘러싸고 방범대원의 행동이 적절했는지, 공권력의 정당방위가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평소 인종문제에 매우 신중한 오바마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며 언급한 흑인 소년 피살 사건은 지난달 26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로리다주 샌퍼드에 살던 마틴은 당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히스패닉계 방범대원 조지 짐머맨(28)은 후드티를 입은 마틴이 약물에 취했거나 음주상태라고 오인해 뒤를 쫓기 시작했다.
문제는 짐머맨이 검문 과정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을 때 경찰이 “추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짐머맨은 마틴의 뒤를 쫓았고 결국 마틴과 격투를 벌여 권총으로 그를 쏘아 사살하기에 이른다. 확인 결과 마틴은 비무장 상태였고 약물이나 음주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경찰은 짐머맨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규정하고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플로리다 등 몇 개 주가 도입한 적극적 방어(Stand your Ground)법에, 스스로 위협을 느꼈다고 생각되는 경우 자기방어를 위해 상대에게 적극적 공격을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무장 상태의 무고한 소년이 총을 맞고 숨졌음에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 이르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흑인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인종 문제로도 번지고 있다, 뉴욕과 마이애미 등에서 짐머맨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급기야 플로리다주는 적극적 방어법을 재고하기로 했다.
이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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