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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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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

입력
2012.03.2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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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안경환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 발행ㆍ384쪽ㆍ1만8000원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은 소송 폭주의 시대였다. 한 해 평균 100만 건 이상의 소송 사건에 국민 400여만 명이 관련됐다. 런던은 법률가의 도시였고, 극작가 중 약 20%가 법학원 출신이었다. 한마디로 법은 영국 문화의 핵심이었다. <법과 문학 사이> <법 영화를 캐스팅하다> 등 예술작품을 토대로 법 교양서를 썼던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셰익스피어에 꽂힌 이유다. 그는 셰익스피어 전 작품을 아우르는 법률 주석서를 쓰고 있는데, 그 중 희곡 12편에 관한 글을 모아 이번에 책으로 엮었다.

안 교수는 셰익스피어 당시의 영국 풍경을 소개하며 법률가의 도시 런던에서도, '셰익스피어는 당시 보통사람보다 자신의 재산적 이해관계에 민감했으며 재산을 얻고 지키려고 기꺼이 법절차에 의존했다'(31쪽)고 말한다. 그리고 이 풍부한 소송 경험을 통해 작가는 '법, 법률가, 법원, 법이론, 법의 속성, 법의 지연, 법의 모호함, 이 모든 것을 익히고 익힌 바를 작품에 담았다.'(같은 쪽)

안 교수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통해 당시 법적 풍경을 소개하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 풀이한다.

<햄릿> 은 살인죄에 관한 종합 교과서다. 선왕 햄릿은 신왕 클라우디스에 의해 독살당하고, 클라우스디스는 선왕의 아들 햄릿의 칼에 찔려 죽는다. 햄릿과 거트루드 모자간의 대화를 방장 뒤에서 염탐하던 폴로니우스도 햄릿의 칼에 찔려 죽는다. 폴로니우스의 딸 오필리아는 물에 빠져 죽고, 아들 레아티스는 합법적인 운동경기의 형식을 통해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다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는다. 한마디로 <햄릿> 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모두 자연사가 아니다. 이 작품에는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살인죄 법리가 정교하게 엮였고,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살인죄 법리 개혁의 내용이 반영됐다.

재판 장면이 없는 <리어왕> 역시 봉건제도 정착 이전 켄트 지역의 관습법이 반영돼있다. 리어왕의 영지를 세 딸이 나눠 갖는다는 발상은 1603년 실제 판결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연구도 있다.

오늘의 시선으로 작품 속 법률을 다시 분석한 장면도 눈에 띈다. <베니스의 상인> 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많이 논의되는 법률희곡이다. 잘 알려져 있듯 이 작품은 유대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 안토니오가 기일까지 돈을 갚지 못해 이자로 심장 부근의 살 1파운드를 주게 된 이야기다. '인육재판'으로 소개된 작품에 대해 일반 독자는 대체로 판사 포셔의 판결에 찬사를 보낸다. 안 교수는 소수 법률가의 견해로 '샤일록이 공정한 재판을 받았는가'라고 되묻는다. 유대인 샤일록은 외국인, 소수 종교인, 소수 인종이다. 외국인에 대해 법적으로 관대한 베니스에서 샤일록은 법을 통한 복수를 꿈꾸지만, 한 치 오차도 없이 1파운드만 떼어내라는 포셔의 판결로 이마저도 실패한다. 저자는 포셔가 안토니오의 친구 아내인 이익관계의 인물이고, 따라서 포셔는 '편견과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정의의 여신이 착용해야 할 안대를 벗어던졌다'고 평한다.

저자는 서두에 데이비드 수터 미 연방대법원 판사의 사례를 들며 셰익스피어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가 판사 후보로 지명됐을 때 일부 언론에서 판사로서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유인즉 그가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저자에게 그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밀턴의 <실락원> , 베이컨의 <지식의 증진> 같은 셰익스피어 시대 고전을 비롯해 노드롭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 같은 문학 전문 서적까지 셰익스피어 희곡과 엮어낸 저자의 글 솜씨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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