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 치료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 폐쇄된 병실, 강제 입원, 고압적 분위기, 가족의 회피와 절망, 환자의 반발과 저항, 그리고 되풀이되는 실패…. 대부분의 알코올중독 치료는 사실 이런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환자들을 직장처럼 출퇴근시키며 13년째 알코올중독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다. 입원하는 것보다 음주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워 보이지만 희한하게도 치료 성공률이 매우 높다.
의류기술자인 박종선(53)씨는 이 센터의 도움으로 30년 만에 술독에서 빠져 나왔다. 그가 단주(斷酒)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치료를 받아들인 덕분이다. 알코올중독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발성이다. 박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혼자서 2차, 3차
심지어 아내가 굿까지 했어요. 700만원이나 들여서.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이라 했겠죠. 그만큼 가족들은 절실했지만, 결국 허사였어요. 직장에서도 항상 술 냄새를 풍길 만큼 내 의지로 술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계속 마셨지요. 술 때문에 실수도 잦았고. 그래서 직장을 수 차례 그만두기도 했어요.
술 마시면 유난히 목소리가 커졌어요.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아내를 새벽까지 붙들고 횡설수설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통에 부부싸움도 많았어요. 아빠가 하도 술을 먹고 다니니 함께 지내기 싫어서 일부러 그랬는지, 공부를 잘했던 아들이 지방대학엘 들어가더군요.
처음 술을 입에 댄 건 21살 때였어요. 남자가 사회생활 하려면 당연히 술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도 한몫 했어요. 특히 어려운 대화를 해야 할 땐 술의 힘을 자주 빌렸어요. 가령 직장에서 상사와 맨 정신으로는 잘 얘길 못할 것 같아서 술 한잔 먹고 만나고….
한번 앉으면 소주 2, 3병은 거뜬했죠. 어느 모임에서나 내가 최고로 많이 마셨고, 술 남기는 꼴을 참지 못해 남들이 남긴 술도 싹쓸이했어요. 그래도 허전해서 혼자 새벽까지 주점이나 포장마차 같은 데로 2차, 3차를 가기 시작했지요. 그게 서서히 습관으로 변해갔고, 탈출구는 점점 보이지 않았어요.
매일 아침 병원으로
거금 들인 굿이 허사로 끝나자 지역에서 제일 큰 병원이니 뭐라도 해볼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아내가 전화한 곳이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이었어요. 첫 면담을 했는데, 솔직히 거부감이 들었죠. 아내도 마음대로 하라며 포기한 듯했고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단 생각이 울컥 올라왔어요. 이대로 가다간 직장도 가족도 인생도 다 잃을 것 같았으니까요.
치료에 집중하려고 직장에 아예 사표를 냈어요. 치료를 받기로 결정한 날까지도 습관처럼 막걸리를 마셨어요.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다음 날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도 혼자 막걸리 3병을 다 마셨죠. 그런데 그게 내 생애 마지막 술이 됐습니다.
치료를 시작하고 8주 동안은 센터에 '등∙하교'하며 음주 관련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의사소통 훈련을 받고 스트레스 관리 요령을 익혔어요. 비슷한 처지의 동기들끼리 함께 다니다 보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요. 치료 내내 주말이 고비였어요. 병원에 다니는 평일과 달리 주말엔 심심하고 자제력도 약해지거든요. 어떻게 시작한 정신무장인데 흐트러질까 싶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겐 아예 술을 못 마신다고 해버렸지요.
8주 프로그램 이후엔 지금까지 2년 넘게 매주 한 번씩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서로 경험담을 나누고 전문가와 상담하면서 마음을 다잡는 거죠. 그렇게 점점 술과 멀어지는 중입니다. 여전히 술이란 말을 들으면 이것저것 떠오르며 생각이 많아지긴 하지만요. 일도 다시 시작했어요. 동료들과 휩쓸려 또 술에 입을 댈까 봐 일부러 야간근무를 자청하기도 해요.
술 없이 사회생활 하는 법
가족들이 강제로 입원시켜 치료받게 했다면 오히려 반발심만 생겼을 거에요. 얽매지 않는 자유로운 치료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병원 오가다 음주 유혹을 극복한 게 도리어 의지를 굳히는 계기도 됐고요.
부천성모병원의 치료는 술을 끊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내가 왜 술을 마시게 됐는지부터 곰곰이 따져보게 했어요. 대인관계를 술을 통해 맺으려 하는 게 알코올에 의존하는 많은 이들의 특징이라더군요. 저 역시 그랬죠. 병원에선 알코올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줬어요. 술자리 밖에서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맺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어떻게 해소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절대 혼자 술 마시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나도 남들 안 보는 데서 마셨고, 감춰놓고 마셨어요. 혼자 먹는 술이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죠. 반주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술이 있어야 밥 먹는 습관도 나빠요. 한두 잔 술은 보약이란 말, 이젠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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