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일정을 발표했다. 2년내 저장조 핵연료제거와 10년 내 노심의 핵연료를 제거하고, 30~40년 안에 원자로와 콘크리트 잔해를 철거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런 복구책으로 일본이 방사능의 공포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절대안전이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예측을 초월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최근의 고리 원전 1호기 정전사고는 '어처구니 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원전 보수 작업자들이 이전에 있었던 실수를 또 반복했고, 이 실수로 인한 정전사고를 은폐하기까지 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역주민으로부터 원전 운전 중단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사고 소식이 알려질 경우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을 우려해 조직적으로 사고 사실을 숨겼다는 대목에서는 말을 잃게 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정부도 해일에 대비해 방호벽을 10m 이상 높이는 등 2015년까지 1조1,000억원을 투입해 50여가지의 안전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하드웨어보다 시급하게 보강돼야 할 부분은 소프트웨어다.
고리 원전 사고에서 일어난 인적오류는 최초의 대형 원전사고 중 하나로 꼽히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에서 발생한 보조급수 계통 정비 인적오류와 닮았다. 고리 원전 사고는 냉각수 공급을 위해 발전소에 전원을 공급하던 두 전력선 중 하나는 정비를 위해 끊어 놓은 상태에서, 나머지는 작업자가 실수로 끊으면서 일어났다. 이 때 비상디젤발전기 한 대는 유지 보수 중이었고, 즉각 작동해야 할 나머지 한 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관리소홀로 가동되지 않았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도 보수작업자와 운전원의 상황 판단 실수에서 비롯됐다. 가압기 밸브 고장으로 냉각재가 빠져나간 것이 발단이 되긴 했지만, 원자로 열을 제거하는 보조급수계통 밸브를 보수작업자가 점검 후에 실수로 닫힌 상태로 내버려 두는 바람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겹겹의 안전 장치가 있었던 탓에 고리 원전 사고가 중대사고로 이어질 상황은 아니었다고 본다. 다만 백색발령의 위기상황을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바로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한다. 차제에 종사자들의 안전의식 수준과 안전문화 강화가 필수적이다.
강력한 인적 쇄신과 병행돼야 할 것이 전문인력 양성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을 중심으로 한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만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가진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에너지 정책에 변화를 준다 하더라도 상당기간 원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실무에 능한 인력 확보를 통해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원전 제어실 운전 근무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원전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공기업 인원 감축 정책에 맞춰 일률적으로 인원을 감축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감독 시스템 정비도 이뤄져야 한다. 원자력산업은 고유한 특성과 방사성 부산물 및 에너지를 적절히 제어해야 하는 등 기술적 위험요소가 내재돼 있다. 안전에 관한 한 임원부터 현장 실무자까지의 역할과 책임 및 권한이 정확히 정의돼야 한다. 그래야 사고 발생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다.
고리 원전 정전사고가 재앙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국민 불안의 기저에는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 사고 사실을 상당기간 숨긴 조직과 구성원들의 희박한 안전의식이 자리한다. 중더러 제 머리를 깎으라고 할 수 없듯 규제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잘하면 이번 사고는 충분히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소를 잃었다면 외양간 고치는 일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외양간지기에도 원인을 따져 물어 재발 방지조치가 제대로 수행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사고를 비롯해 잊을 만하면 터지는 국내 원전고장 사고는 설비의 문제라기보다는 작업자, 최고 경영진, 규제기관의 안전문화 미성숙에 원인이 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외양간보다 외양간지기에 취해질 조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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