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심장한 중국발 뉴스가 잇따르고 있다. 대중적 인기가 높던 보시라이(簿熙來)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실각이 가장 눈길을 끌지만, 경제부 기자 입장에서는 '1ㆍ2월 중국 대규모 무역적자'나 세계은행이 지난달 말 베이징(北京)에서 발표한 중국 장기 전략 보고서 '차이나 2030'이 더 중요해 보인다. 특히 뒤 두 가지 뉴스를 이해하면 보시라이 실각의 이면을 더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차이나 2030은 표면적으로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가 제안해 작성됐지만 사실은 중국 내 개혁론자들이 세계은행의 공신력을 빌어 차기 정권에 자신들의 정책을 반영하려는 작품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보고서는 "2030년이 되면 중국 경제성장률이 5%까지 감속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지난 30년간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발전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새 패러다임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고서 중 중국경제가 직면한 위험 중 하나로 '중진국의 덫'을 언급한 것이 눈에 띈다. 중진국의 덫이란, 개발도상국이 초기에는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이다 중진국에 이르면 성장이 정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덫의 위력은 매우 강력해 1960년 중진국으로 분류됐던 101개 나라 중 2008년까지 그 덫을 탈출한 나라는 13개에 불과했다. 왜일까? 개도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했던 성공 요소가 추가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족쇄로 변하기 때문이다. 국가주도 발전전략, 노동집약적 산업, 높은 저축률과 낮은 소비성향 등이 그것이다. 족쇄를 풀 방법은 철저한 체질개선뿐인데, 그간의 성취마저 부정해야 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중국 고도성장의 바탕이 된 '저(低) 위안화'정책도 한계에 도달했다. 무역흑자를 미국 국채 매입에 쏟아 부으며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해 왔지만 미국 달러의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밑천 삼아 위안화의 국제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지난달 중국 인민은행이 자본시장 개방을 위한 3단계 정책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아무리 신중히 진행한다 해도 자본시장 개방은 위험한 모험이다. 1930년대 미국을 필두로 90년대 전반 일본과 90년대 후반 한국 등 대부분 나라들이 금융시장 개방 과정에서 '금융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혁이 주춤거리는 사이 중국의 성장동력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중국이 올 1, 2월 22년만의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은 그 징후 중 하나다. 설연휴가 있어 1ㆍ2월의 중국 무역수지는 늘 저조했지만 42억5.000만 달러 적자는 너무 크다. 경제전문가들이 "중국 경제 최대 위협요소가 인플레이션에서 성장으로 대체됐다"고 지적할 정도다.
이렇게 위태로운 시기가 정권교체기와 겹쳐 있다. 산적한 문제들을 개혁하려면 정부 역할이 중요한데 현 집권세력인 공청단(共靑團ㆍ공산주의청년당 요직을 거친 인물들의 파벌)은 자신들에게 성공을 안겨준 과거 방식을 좀처럼 고치려 하지 않은 채 관료제 뒤에 숨어 개혁의 목소리를 권위적으로 억누르고 있다.
이 와중에 고도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된 농민과 도시빈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쌓여가고 있고, 차기 집권이 예정된 태자당(太子黨ㆍ중국공산당 1세대 자제들의 파벌)은 이들에게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공청단을 압박하려 한다. 지난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정치개혁 실패 땐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또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후 보시라이가 전격 실각한 것은 '지는 권력'으로 보이던 공청단이 태자당을 향해 반격을 개시한 것이다.
권력투쟁이 본격화하면서 진짜 시급한 문제, 즉 중진국의 덫을 벗어나기 위해 양성해야할 중산층, 혁신적 기업인, 지식ㆍ숙련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대변할 정치세력이나 정책은 실종 상태다. 정치인 모두가 개혁을 말하지만 누구도 당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정영오 경제부 차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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