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씨(32)는 대구 집에서 30㎞ 떨어진 직장까지 매일 승용차로 출ㆍ퇴근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직장 근처로 집을 옮기기가 여의치 않은데다, 무리를 해서 이사를 하더라도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김씨의 하루 주행거리는 60㎞. 소형차를 타고 다니지만 기름값이 월 평균 35만원이나 든다. 기름값에 포함된 유류세는 16만9,000원으로, 김씨 월급(150만원)의 11.3%. 김씨는 “유류세를 몇 만원만 줄여줘도 형편이 좀 나을 듯하다”고 하소연했다.
22일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 서명운동 참가자 10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전체 소득의 평균 25% 정도를 기름값으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름값의 48.35%(휘발유 기준)가 유류세이기 때문에, 전체 소득 중 유류세 비중은 12%에 달한다. 이는 연봉 1억원 초과~2억원 이하 고소득 직장인의 소득세 실효세율과 맞먹는 수치다.
이날 한국납세자연맹이 서울 남대문로 대우재단빌딩에서 연 ‘유류세 불공평 폭로 기자회견’에는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유류세 인하를 주저하는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이들은 “고유가로 서민들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는 당장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매일 새벽 1톤 트럭을 몰고 서울 노량진과 가락동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떼다 파는 박경래(49)씨는 “한달 기름값 100만원 중 40만원이 세금(경유 유류세 40.08%)”이라며 “매달 70만~80만원의 수입으로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유류세라도 낮춰주면 숨통이 트이겠다”고 호소했다.
생계형 운전자를 비롯한 취약계층에 대해서만 유류세 일부를 환급해주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비판도 높았다. 1톤 트럭을 이용해 재래시장 부근에서 도넛을 만들어 팔다가 최근 비싼 기름값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을 접은 정순길(43)씨는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기름값 때문에 고통 받는 저소득층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선별 지원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처음부터 덜 걷어가는 게 옳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은 회사에서 유류비를 전액 지원받고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는 종합소득세 계산 때 유류비 전액을 비용으로 공제받아 전혀 부담이 없다”면서 “결국 기름값이 올라가면 대다수 서민들만 고통을 받는 게 우리나라의 유류세 구조”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처럼 유류세 수입이 많은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면서 “정부는 복잡한 유류세 구조를 모르는 서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일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2010년 유류세 세수는 국세 수입의 14%(25조원)로 근로소득세(16조원)보다 1.5배나 많았다.
유류에 부과되는 탄력세율이 이름과 같이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는 2009년 5월 휘발유 ℓ당 475원으로 정액이던 교통세에 11.37%(54원)의 탄력세율을 적용한 이후 아직껏 조정하지 않고 있다. 최 원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법은 탄력세율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했는데, 이는 ‘조세의 부과ㆍ징수는 반드시 국회에서 제정하는 법률에 의해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면서 “유가 변동에 따라 세율이 탄력적으로 연동되도록 수치를 법으로 정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이날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지역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보통휘발유 가격은 ℓ당 2,113.31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연일 상승 중이다. 자신이 낸 유류세가 얼마나 되는지는 한국납세자연맹 홈페이지(www.koreatax.org) ‘나의 유류세 알아보기’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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