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이반(樂堂利班)은 국악 전문 음반사다. 음악의 악, 무리 당, 이로울 이, 나눌 반. 음악 하는 무리가 모여 이로운 것을 나눈다는 뜻이다. 최고의 사운드를 자랑하는 악당이반의 음반은 한옥 녹음과 퓨어 레코딩(Pure Recordingㆍ음원에 어떤 변형도 가하지 않는 녹음)이 특징이다. 한국에선 유일하게, 기존 CD와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 음질의 슈퍼 오디오CD(SACD)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악당이반의 SACD '정가악회 풍류 3집'은 한국 음반으로는 최초로 2011년 그래미상 예선에 진출했다. 본선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다들 악당이반을 다시 보게 만든 일대 사건이다. 최근에는 한국 연주자들의 클래식음반 레이블 '오뉴월'을 시작했다.
대표 김영일씨(50)는 본래 잘 나가는 사진작가다. 그가 찍은 인물사진은 한 장에 1,000만원이 넘는다. 돈도 꽤 벌었다. 그런데 2005년 악당이반을 설립한 뒤로 몽땅 쏟아붓고 있다. 1년에 딱 1억만 까먹자고 시작했는데 아뿔싸, 작년 한 해 적자만도 4억 7,000만원. 그래도 계속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사로잡은 것일까.
_지금까지 악당이반 이름으로 낸 음반이 몇 장인가
"57종. 판소리가 제일 많아 열 대여섯 종쯤 된다. 그 다음이 민요, 그 다음으로 산조가 10여종 된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산조는 정말 위대한 음악이다. '문인악'으로 분류되는 가곡ㆍ가사ㆍ시조 음반이 너댓 종, 범패ㆍ영산회상 같은 음반이 서너 종. 궁 밖의 민간음악 중 최상위를 문인악으로 치면 그 바로 아래가 민속악인데, 그렇게 쭉 내려가다 만나는 아주 독특한 것이 굿이다. 굿 녹음을 꽤 해뒀는데 음반으로 만든 건 없다. 굿이란 게 제대로 하면 2박 3일, 1박 2일이라 일부만 떼어내 음반이라고 하기가 곤란하다. 나중에 형편 되면 한 10시간 짜리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은 한다."
_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퓨전 국악이 유행이다. 그 쪽은 안 만드나.
"10여장 만들기는 했는데, 아직 이 땅에 진정한 퓨전은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악기에 양악기 몇 개 섞는다고 퓨전이 아니다. 그건 그냥 믹스다, 커피 믹스 같은. 고전, 다시 말해 근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존 작업을 뛰어넘는 창작이라야 진짜 퓨전이다.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가 모차르트, 베토벤을 버렸나. 아니다. 다 섬기고 그 안에 녹아 있으면서도 자기 표현을 한 거다. 요즘 친구들이 보고 듣는 게 하도 많아서 섞는 데는 선수다. 하지만 이 색 저 색 섞어 놓기만 하고 자기 표현이 없으면 점수를 줄 수 없다."
_악당이반에서 음반 낸 팀들이 들으면 섭섭하겠다.
"내가 대놓고 말한다. 그런 음반은 호객용이라고. 처음부터 산조 70분 짜리를 들으라고 하면 (듣기 힘들어서) 아주 주리를 튼다. 그러니까 말랑말랑하고 들어봄 직한 음악으로 시작해갖고 살살살 깊이 끌어들이는 거다. 연주자들이 처음엔 불편해하더라. 지금은 좋아한다. 그 친구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이 음반으로 만났지만 나는 다른 골목에 가서 자네들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인생 살다 보면 반드시 지나게 돼 있는 그 골목의 이름이 산조다, 열심히 연습해서 그 골목에서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만나자고. 하도 산조 산조 하니까 남들이 나를 '산조아빠'라고 부른다. 산조 전집 내는 것이 필생의 소원이다."
_한옥 녹음을 고집하는 이유는
"한옥은 최고의 스튜디오다. 서양식 스튜디오는 밀폐 공간에서 소리를 제어하기 위해 흡음 장치 해놓고 녹음하지만, 한옥은 뭐 하나 고칠 것 없이 그 자체로 최상의 녹음 환경이다. 정 뭣하면 창호지나 새로 바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창호지, 이게 대단하다. 북 소리가 아주 시끄러운데, 이 소리를 창호지 쪽으로 쭈욱 밀면 쑥쑥 빠져나간다. 흡음재나 반사재가 필요없다. 한옥 내부의 소리는 서까래에 부닥쳐 천천히 분산되면서 우리 목소리에 가까운 중저음만 딱 남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좋은 스튜디오를 가장 많이 가진 셈이다. 서양은 요즘 그런 녹음하려고 크고 작은 교회에다 마구간도 고쳐서 스튜디오로 쓰지 않나."
_악당이반의 퓨어 레코딩을 설명해달라.
"내가 만든 단어다. 녹음할 때 믹서, 컴프레서, 리미터, 이퀄라이저, 이팩터 등 기계장치를 전혀 안 쓴다. 연주자와 마이크, 녹음기가 전부다. 녹음한 뒤 소프트웨어를 이淪?음을 변조하거나 없는 음표 만들고 틀린 데 다시 더빙하는 일도 전혀 안 한다. 있는 그대로 담는다. 요즘은 사진도 뽀샵(포토샵)을 한다. 눈도 키우고 나처럼 다리 휘어진 놈은 똑바로 만들기도 하고, 전봇대도 뽑고 별 짓을 다한다. 음악 쪽도 소리를 이렇게 붙이고 저렇게 붙이고 늘리고 땡기고 없는 음표 만들고 하는 기술이 발달돼 있지만, 악당이반은 그런 거 전혀 안 한다."
_한옥처럼 열린 공간에서 그렇게 녹음하면 잡음이 들어갈 텐데.
"저녁 풀벌레 소리, 아침 까치소리, 이웃집 개 짖는 소리, 다 들린다. 녹음 엔지니어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소리가 그런 잡음이다. 하지만 물어보자. 무엇이 잡음인가. 그 자리에 원래 있는 자연의 소리가 잡음인가. 아니다. 오히려 음악을 받쳐주는 추임새다. 그들이 주인이고, 우리가 잠시 그 공간을 빌려 쓰는 것뿐이다. 담양의 소쇄원 광풍각에서 녹음한 우리 음반에는 쉬이이 하는 노이즈가 들어 있다. 그 아래 흐르는 시냇물 소리다. 안동의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김호성 선생 시조를 녹음할 때 천둥 소리도 추임새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비가 줄줄줄줄 내리더니 우르릉 천둥이 울었다. 연주자들 평균 연령이 70세가 넘었는데, 끄떡도 안 하더라. 띠리리 하고 청을 맞추더니 바로 '청산~'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천둥은 근사한 추임새가 됐다. 사람이 만들지만, 사람이 관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최상의 레코딩이다."
_악당이반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슈퍼오디오CD(SACD)를 만든다. 왜 SACD인가.
"기존 CD는 1980년대에 나온, 이제는 지나간 기술이다. CD 이후 HD, 3D, SRCD, HQCD, 블루레이, 그렇게 기술이 진보했다. 그 최상위가 SACD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모른다. 우리 음악을 왜 후진 그릇에 담는가. 최고로 담아야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
_작년 그래미상 진출 이야기를 들려달라.
"예선에 나갔고 본선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한국 최초다. 그 과정에 곡절이 많았다. 책에 국제도서분류번호(ISBN)가 붙듯 음반은 수록곡마다 저작권을 밝히는 국제표준녹음코드(ISRC)라는 게 있다. 이게 있어야 그래미상에 응모할 수 있고 정식 수출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과 더불어 몇 안 되는 미가입 국가다. 불법복제 많은 나라로 찍혀서 안받아준다. 국내에 SACD 찍는 기술이 없어 악당이반 음반은 일본 소니에서 찍어오는데, 이것도 ISCR 있어야 해준다. 이거 우리 애국가인데 왜 안 찍어주냐, 한일 감정이냐, 그런 소리가 안 통한다. 악당이반이 그래미에 간 것은 국가번호 대신 따로 고유번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KRA41(한국 41)이 악당이반의 번호다. 이거 받으려고 5년 간 정말 고생했다. 설움도 많이 겪었다. 눈물 나는 시간이었다. 그 전에 악당이반 음반으로 2007년부터 매년 세계 최대 음악박람회인 미뎀(MIDEM)에 갔더니, 쳐다보는 눈초리가 이상했다. 알고 보니 너 반칙이야, 그런 뜻이더라. ISRC 등록해서 SACD 들고 갔더니 대접이 달라지더라. 그 전엔 파리만 날렸는데, 30분 단위로 미팅이 이어졌고 수출도 할 수 있게 됐다."
_그렇게 고생해서 최고 음질로 만든 음반이 잘 팔리기는 하나.
"1년에 판소리는 10장, 산조는 20장 정도 팔린다. 지금까지 만든 음반 57종 가운데 1년에100장 이상 팔아본 건 그래미에 갔던 정가악회 음반 하나뿐이다. SACD는 일반 CD보다 제작비가 두 배인데, 제작비도 안 빠지니 팔수록 손해다."
_그러면 어떻게 지탱하는가.
"프로젝트마다 헤쳐 모여 식으로 함께 일하는 사진가 11명의 '그루비주얼'에서 고맙게도 수익의 10%를 악당이반에 지원해 준다. 하지만 그 힘도 한계가 있다. 안되겠다 싶어서 작년에 회계사 세무사 불러서 몇 년 가면 망하겠는지 계산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썩을 놈들이, 희망이 없다고, 완전히 길에 나앉는다고 하더라. 그래도 환갑까지는 버틸 거다. 햇수로 8년 남았다. 환갑이면 태어나서 육십갑자를 돈 건데, 그때까지 뭔가 이뤄 놓아야 한다. 그 뒤에는 놀고 싶다. 스노보드도 타고 벗들과 놀다가 죽어야지. 지금 우리집은 전세다. 죽을 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을 거다.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_한국 연주자들의 클래식음반을 만드는 레이블 '오뉴월'을 시작한 뜻은.
"한국 클래식계에 재능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많다. 그들의 음반을 만들고 싶다. 현재 국내 클래식음반은 죄다 외국 레이블이다. 재능이 눈에 띈다 싶으면 그들이 데려가서 음반 만든다. 빨대 대고 쫙쫙 빨아내는 형국이다. 이 땅에 콘텐츠가 남을 수 없다. 우리가 직접 생산하지 않으니, 외국에서 음반 만들어주지 않으면 듣지도 못한다. 이래서는 망한다. 10년도 길다. 5년 안에 우리 음반 시장은 100% 수입시장으로 변한다. SACD 같은 하이퀄리티 시장에 나가야 하는데, 만들지 않으니 내다 팔 게 없다. 에르메스는 하나 팔면 천 몇백만원씩 걷어가는데, 우리는 계속 삼태기나 말아 갖고 팔고 있다."
_오뉴월의 첫 음반 연주자는 누구인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다. 외국 음반사 제의 다 거절하고 악당이반에서 음반 내기로 했다. 녹음 마치고 마스터링 중이니까 5월에 발매된다. 세계 최초의 '솔로 서라운드' SACD로 만든다. 피아니스트 혼자 연주하니까 모노 녹음인데, 마이크를 16개 배치해서 서라운드 믹싱을 했다. 관객 한 명이 공연장 객석을 전부 사서 피아니스트와 단 둘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_오뉴월의 그 다음 계획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자에게 5년 시간을 줬다. 1년에 한 개씩, 어느 한 해는 2개 녹음하자고 했다. 누구라고 밝힐 단계는 아니다. 가다가 자빠지는 수가 있으니까. 극히 개인적인 소원으로 한국 오케스트라의 바순 연주자들 음반을 다 내고 싶다. 바순은 오케스트라에서 마이너 중에 마이너여서 음반 낼 기회가 참 없다. 외국에서도 한 사람이 2장 이상 낸 건 딱 두 명뿐이더라. 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고 어머니 목소리 중에 가장 낮은 톤 같은 걸 들려주는 악기는 바순뿐이다. 범은 가죽을 남기고 음악가는 음악을 남기는 건데, 일생에 한 장은 내야 하지 않겠나. 어떤가, 황당한 계획 같은가."
황당할 것까지야. 뜻은 좋은데, 돈이 될 것 같진 않다고 했더니 그가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아무튼, 그런 짓을 하고 사는 놈인 것 같습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저더러 괴짜라고 하시는데, 여러분이 오늘 말이 안 되는 놈을 만나고 계신 겁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 사진작가 김영일
사진 작가로서 그는 인물 초상 사진이 전문이다. 그의 사진은 비싸다. 재벌 회장 등 내로라 하는 인물들 사진 박을 때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는데, 1994년 한 잡지사의 요청으로 소리꾼 채수정 사진을 찍으면서 그만 딱 얼어붙었다. 판소리할 때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단가, '편시춘'. 그 소리에 넋을 뺏겼다. 이 좋은 것을 왜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이 좋은 소리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국악 음반 제작자가 되었다. 지금도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하지만, 전시는 오래 잊었다.
그가 모처럼 20년 만에 사진전을 한다. 5월 20일 서울의 에르메스 전시장에서 시작해 내년 2월 유럽으로 간다. 전시 제목은 '귀한 사람들', 주제는 한복이다.
한복은 허상일까 실상일까. 그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한복은 누가 어떨 때 입는가.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다시 나갈 때까지 한복 입은 사람을 몇이나 볼 수 있을까. 쭉 찾아 봤더니 국악인이 나왔다. 한복을 입고 뭔가 생산하고 플레이하는 사람은 그들뿐, 그들이 그의 귀한 사람들이다.
그는 진흙 속에서 연꽃을, 진주를 보고 듣는 사람이다. 종로 3가의 단성사 뒷골목에서 그는 보배를 본다. 꾀죄죄한 한복집에서 평생 동정만 단 할머니, 옷소매만 20년 넘게 단 아주머니, 그런 이들을 그는 '한국의 진짜 에르메스'라고 부른다. 그 양반들 찍은 동영상을 유럽 전시에 함께 갖고 간다. 우리 스스로는 귀한 줄 모르고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것들을.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국악 음반 제작자로 나서니까 남들이 변했다고 하지만, 그 자신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소중한 것을 담고 싶어 사진을 택했듯 같은 이유로 선택한 길이다. 보이는 것을 담으나 들리는 것을 담으나, 유형을 담으나 무형을 담으나 담는 건 똑같다고 말한다. 그는 변함 없이 한 길을 걷고 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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