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을 추진 중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내 반도체 업계에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A사를 막무가내로 내쫓으려 해 물의를 빚고 있다. LH는 당초 세종시 건설 부지에 포함된 A사의 공장과 사무실을 2012년 말까지 이전하도록 조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작년 말 국무총리실 이전이 2012년 9월로 확정되자 "총리실 공무원들에게 불편을 줄 수는 없다"며 공장을 빨리 철거하라고 강요했다. LH는 A사가 "지금 공장 가동을 멈추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며 읍소했는데도, 민간용역업체까지 동원해 철거에 나섰다.
21일 LH 등에 따르면 충남 연기군 남면 월산산업단지에 위치한 A사는 2006년 세종시 건설부지에 편입됐다. A사 인근에 중앙행정기관이 들어서게 되면서 환경오염 업종이 많은 월산산업단지를 친환경 산업단지로 재조성하겠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특히 A사 공장 부지(4432㎡)는 산업단지를 관통하는 대중교통중심도로(BRT) 예정지에 포함됐다.
LH는 월산산업단지가 공공기관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어서 최소 2012년 말까지 운영을 허용했고, 지금도 20여개 중소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문제는 총리실 입주가 올해 9월로 확정된 이후 LH가 당초 도로 개통목표(2013년)보다 공정을 대폭 앞당겨 올해 8월 개통키로 변경한 것. 이 도로가 고속철도(KTX) 오송역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총리실 등 세종시 입주기관 공무원들에게 주요 도로로 쓰일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LH는 작년 말 A사에 "2012년 2월 말까지 공장을 이전하라"고 요구했다. LH관계자는 "첫 행정기관 입주가 계획보다 빨라져 도로공사도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며 "원활한 공사 진행을 위해선 A사 공장을 늦어도 3월까지 이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말 공장 이전을 계획하고 있던 A사가 LH의 갑작스런 철거 통보를 이행할 수는 없었다. A사가 이전 예정부지에 공장신설 허가를 받은 것은 작년 말. 불과 2~3개월 새 공장을 짓고 물품을 옮기기엔 역부족이었다. A사가 이런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LH는 "공사를 지체할 수 없다"며 이달 9일 공장 철거에 들어갔다. A사가 "불법"이라고 막아 섰지만, LH는 "법적 판단은 나중에 하겠다"며 민간철거업체 직원을 앞세워 공장 전기를 차단하는 등 행정대집행을 이행했다.
A사는 법원에 급히 행정대집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에서 이 신청을 받아들여 일단 5월 말까지 공장 철거를 미룰 수 있게 됐다. A사 관계자는 "대통령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고 했는데, 어떻게 공기업이 이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생산 활동보다 총리실 직원들이 이용할 도로를 빨리 만드는 게 더 중요하냐"고 반문했다.
A사는 1984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핵심 부품인 무정전 판넬 등을 개발,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A사가 공장 가동을 중단할 경우 국내 대기업의 반도체 생산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토지 보상 후 2012년 말까지 이주하도록 이미 협의가 된 상태였지만, 세종시 건설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조기 공장 이전을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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