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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20년/ 도발과 저항의 첫 '세대 음악' 엄숙을 비틀고 관습을 뒤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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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20년/ 도발과 저항의 첫 '세대 음악' 엄숙을 비틀고 관습을 뒤엎다

입력
2012.03.2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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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대중적 파괴력이 절정이었던 때 그의 팬들은 강한 결속력을 드러내며 위 세대가 쳐놓은 틀과 충돌하곤 했다. 그들은 공공연히 "이게 바로 우리 세대죠!"라는 말을 했다. 흔히 X세대로 규정된 당시 청소년들은 이전에 말이 없다가 서태지의 등장과 함께 눈을 부릅뜨고 외치기 시작했다.

입시와 규율에 눌려 소외된 이들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뭉치게 한 인물이 서태지였다. 그들에게 서태지가 여느 스타와 같은 '오빠'가 아니라 의식의 동행을 견인한 '사회적 리더'로 솟아난 것은 당연했다. 그는 누군가 부당하게 건드리면 용수철 튀듯 즉각 반발하곤 했던 이 새로운 세대의 꿈과 희망이었다.

서태지의 모든 것이 이 세대정서와 관련한다. '난 알아요'부터 그랬다. 무엇보다 그는 랩을 국산화했다. 그 무렵 랩은 국내 음악계에도 알려졌으나 방정맞다는 인상 탓에 누구도 우리말 랩에 덤벼들지 못했다. 현상(現狀)이 나른하고 단조로웠던 청소년들에게 서태지의 우리말로 된 랩은 사회전반의 엄숙과 관습에 대한 비틀기를 의미했다.

거기에다 서태지는 강렬한 록 기운을 곡에 불어넣었다. 뒤에 나온 '하여가'와 마찬가지로 그때까지의 대중적 히트곡 가운데 기타 노이즈를 대담하게 배치한 것은 서태지가 유일했다. 곡 구성은 치밀했고 TV에서 공개한 댄스는 '회오리춤'으로 명명될 만큼 다이내믹했다. 그것이 아이들을 들뜨게 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것, 흥분된 것을 좋아한다. 강한 댄스와 묶이면 그들을 더 흥분시킨다!"는 영국 무용교육학자 로이스턴 맬둠의 말처럼.

기성세대는 당황했다. 서태지의 음악은 전혀 청취 경험이 없는, 느닷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변화에의 적응 속도가 더딘 어른들은 정도의 차가 있었을 뿐 대체로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공유했다. "서태지가 나오고부터 가요를 안 들었어!" 하지만 이전 세대가 들었던 포크, 발라드, 민중가요는 대세 이양을 강요받았다. 서태지가 없었더라면 국내에서 흑인음악 그리고 '세대음악'의 출현은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다.

젊은 세대를 등에 업은 서태지는 위풍당당했다. 1994년에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강력한 얼터너티브 록과 메탈로 채색한 3집 앨범으로 또 한 차례 격변의 기치를 들어올린다. '교실이데아' 같은 현실적, 도발적, 저항적 메시지의 노래는 교실은 물론 사회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2년 전 '난 알아요'가 음악적 광풍이었다면 이번은 사회적 쓰나미였다. 아마도 국내음악 역사상 주류스타로서 기성질서와 가치에 맹공을 퍼부은 뮤지션은 서태지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세대의식은 마침내 사회성과 저항을 만났다.

서태지세대는 불굴의 세대 저항의식을 수혈 받아 세상에 눈을 돌렸고 뭉칠 줄 알았다. 20년이 흐른 지금은 사라진 것 같지만 실은 암약한다. 때가 되면 전면에 나설 것이다. 사회 역동성과 변화는 과거 정치경제의 몫이었지만 앞으로 문화가 주도할 것임을 서태지세대는 예고했다. 대중문화의 힘이다. 서태지와 함께 새로이 발견한 대중문화의 소셜 파워를 상정하지 않고는 우린 이제 어떠한 것도 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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