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 수출업종은 조선이다. 그렇다면 2위 수출 효자업종은 어딜까.
반도체? 아니다. 휴대폰? 그것도 아니다. 그럼 자동차? 역시 아니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정유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수출이 많은 업종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주유소다. SK,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 간판이기 때문에 대부분 소비자들은 ‘정유=내수산업’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정유업은 수출산업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제품 수출액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517억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전체 수출금액의 약 9.3%를 차지하는 규모. 작년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가 총 1,007억 달러어치였으니까, 지불한 금액의 51%를 수출로 다시 회수해 온 셈이다.
정유산업들이 우리나라 주력 수출산업으로 부상하게 된 건 전적으로 ‘투자의 힘’, 바로 고도화 시설 덕분이다.
고도화 시설은 값싼 벙커C유를 정제해 값비싼 휘발유나 경유로 재생산하는 장치. 원유를 수입해 단계별로 휘발유 경우 등유 벙커C유를 빼내고, 벙커C유 등을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를 또다시 뽑아내는 시설이다. 질 좋은 고부가가치 기름을 뽑아낸다는 점에서 ‘지상유전’이라고 불린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 GS칼텍스는 전남 여수, 에쓰오일은 울산, 현대오일뱅크는 충남 대산에 각각 초대형 고도화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익 대비 투자비율로 보면 아마도 정유업이 가장 높을 것”이라며 “고도화 시설에 대해 일찌감치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임에도 대규모 석유제품을 수출하고 고유가속에서도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GS칼텍스 관계자도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 석유제품 수요가 많기 때문에 고도화 시설에서 정제된 제품을 지속적으로 수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유사들이 최근 주목하는 건 정유 이외의 사업, 그 중에서도 윤활기유다. 윤활기유는 윤활유 완제품의 80%이상을 차지하는 기초 원료로, 첨가제와 섞어 자동차나 선박 및 산업용 윤활유 완제품을 만드는데 쓰인다. 최근 세계 자동차 수요 증가와 환경규제 강화로 고품질 윤활기유 제품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이익률만 비교해도 정유 사업 보다 윤활기유 같은 비정유 사업부문이 훨씬 높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과 윤활기유 등의 비정유 사업이 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에서는 60~70%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의 윤활기유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SK루브리컨츠는 울산, 인도네시아에 이어 스페인, 중국에도 공장을 신설했다. 또 지난해 8월에는 일본 JX에너지와 손잡고 울산에 하루 2만6,000배럴의 생산 규모의 윤활기유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 2007년부터 윤활기유 생산을 본격화 하고 있는 GS칼텍스는 윤활기유 매출의 약 75%가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전세계에 수출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해 매출 1조6,420억원에 영업이익 4,110억원을 기록, 영업이익률이 25%에 달할 만큼 알토란 같은 성과를 냈다.
세계 2위 생산시설을 갖고 있는 에쓰오일은 윤활기유 생산량의 60% 이상을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 2008년 프랑스 토탈과 합작법인을 세운 뒤 윤활유의 해외 판매망 확대에 나서고 있다. 에쓰오일도 영업이익률이 29%에 이른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달 정유 4사중 마지막으로 윤활기유 사업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정유사인 쉘(Shell)과 합작으로 윤활기유 사업에 진출한 것.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정유나 석유화학 보다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다”면서 “특히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등 자동차 시장의 호황으로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아 향후 비전도 높은 업종”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제 우리나라 정유업은 단순히 원유를 사다가 주유소에서 기름 파는 차원이 아니다”면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산업이자 수출에 절대적으로 기여하는 산업으로 올바르게 인식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 정유4사 "석유시대 이후를 대비하라"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는 이제 '기름'을 넘어 새로운 사업투자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화석연료인 석유의 시대가 언젠가는 끝날 수 밖에 없는 만큼 그 이후를 차근차근 대비한다는 취지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한편으론 일반 자동차에 들어갈 휘발유를 생산하고, 다른 한편으론 휘발유를 대체할 전기차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 두 가지 모두 '에너지'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10년 현대차의 전기차 시제품 '블루온'과 기아차의 양산형 전기차 '레이'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됐고 작년 2월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스포츠카 'AMG'의 첫 전기 수퍼카에도 리튬이온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결정됐다. 이 회사는 현재 충남 서산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을 신설중이다.
GS칼텍스도 2차 전지 핵심 소재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GS칼텍스는 2차 전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소재인 음극재 사업에 투자를 집중하기로 하고, 지난해 경북 구미 산업단지에 연산 2,000톤 규모의 공장을 기공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이 정도 생산규모는 세계 10%의 점유율에 해당한다"며 "급성장하는 시장인 만큼 신속한 투자와 품질관리로 시장흐름을 선도하려 한다"고 말했다.
파라자일렌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파라자일렌은 면화를 대체할 수 있는 폴리에스터 섬유의 기초 원료로 중국, 인도를 중심으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에쓰오일은 지난 해 울산시 울주군 온산공단에 연간 34억벌의 옷감을 만들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파라자일렌 생산시설을 준공했다. SK이노베이션 산하 SK종합화학은 지난해 총 투자규모 1조원에 육박하는 파라자일렌공장 증설에 나섰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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