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목란은 평양 예술학교에서 아코디언을 전공했다. 뜻하지 않은 사고에 휘말려 한국에 왔지만 북에 있는 부모가 사무치게 그립다. 부모를 서울로 데려와 준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거액을 사기 당했고 자살을 시도했다. 우연찮게 공훈예술가인 부모가 수용소에서 추방돼 지방 예술단체에서 활동한다는 소식을 접한 목란은 재입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룸살롱 사장의 큰 아들 태산의 간병인으로 취직한다. 태산은 옛 애인을 못 잊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목란은 아코디언 연주를 들려주며 태산의 마음을 달랜다.
연극 '목란언니'는 20대 탈북 여성과 재입북, 룸살롱이라는 소재의 조합에서 느껴지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극장 중앙에 놓인 사각의 무대는 4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개방형 구조다. 배우들은 무대의 네 모서리에서 수시로 돌출하며 서울 사람이 됐다가 또 금세 평양 사람이 된다. 때로 뮤지컬처럼 곁들여진 음악과 춤은 빠른 장면 전환을 돕는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낯선 북한 가요와 말도 흥미롭다.
현실의 탈북 문제가 정치 논리로 점철된 것과 달리 연극은 조목란의 시선으로 현실과 이념의 경계를 다룬다. 북한의 엘리트였던 올바른 성품의 목란이 돈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은 본디 서울에 생활의 뿌리를 두었던 태산, 태강, 태양 삼남매의 삶이 망가지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올해 초 기준으로 국내 입국 탈북자가 2만 3,0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연극 속 조목란의 서울살이는 재입북 자금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곧장 순박함에서 독살스러움으로 외면을 확 바꿀 만큼 평양의 삶보다 더 고통스럽다. 많은 이들이 남북 분단 상황에 무뎌지고 있지만 분단의 폐해는 흔히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의 반영인 셈이다.
주로 뮤지컬에 출연해 왔던 목란언니 역의 정운선은 집중력이 돋보이는 연기로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연극의 소재를 제공했다는, 평양이 고향인 음악감독 채수린씨의 아코디언 연주도 인상적이다.
우리 사회의 경계를 살펴 보고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취지로 두산아트센터가 지난해부터 마련한 연극 '경계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작 김은성, 연출 전인철. 4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1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