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선생님들의 언질에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절 잘 따르던데요. 아이들이 저 어렸을 때처럼 말썽꾸러기가 되지 않게 예의를 가르치고 싶어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 성미산마을의 대안학교 성미산학교에서 13일부터 수업을 시작한 신입교사 박민수(20)씨는 "이제야 선생님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성미산마을은 1994년 공동육아를 하려는 젊은 부모들이 직접 어린이집을 만든 후 생활협동조합, 공동주택, 마을극장이 들어서며 조성된 서울의 대표적 공동체 마을. 초중고 통합 과정인 성미산학교는 이곳 아이들에게 생태적 삶을 가르친다는 취지로 2004년 9월 문을 열었다. 당시 30명이던 학생이 8년 만에 다섯 배가 넘는 160명으로 늘었다.
박씨는 첫 성미산학교 학생 출신 교사다. 2008년 이 학교에서 중등과정을 마친 후 4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해 축구 특기생으로 입학한 광주의 한 대학을 그만두고 이번 학기부터 성미산학교에서 일주일에 이틀간 초등과정 4~5학년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친다.
박씨의 계획은 단 한가지, 자신이 성미산마을에서 배운 대로 돌려주는 것이다. 그는 마을의 시초가 된 공동육아어린이집 1세대다. 두 살 때던 1994년 처음 생긴 우리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해 성미산마을과 함께 자라온 마을 토박이. 아버지는 마을 공동주택 컨설팅회사 '소통이행복한주택'대표이고, 어머니는 유기농 반찬가게 '동네부엌'에서 일한다. 성장기가 성미산마을의 역사와 얽혀 있기에 박씨가 모교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마을 특유의 문화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유난히 사고를 많이 치는 학생이었는데도 선생님, 부모님, 마을 어른들 누구에게도 맞거나 심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어요. 항상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대신 벌로 장애인복지관 등에 봉사활동을 보내셨죠."
나쁜 짓 하면 금세 알려지는 마을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마을 어른들이 모두 그를 아들처럼 아꼈다. 박씨가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던 2009년 마을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유학비를 보태주기도 했다.
지난해 대학 축구팀 감독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후 꿈이었던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한 박씨의 상처를 안아준 것도 성미산마을이었다. 방황하던 박씨에게 "교사로 오지 않겠냐"고 손을 내밀어준 이는 성미산학교 은사인 정현영 교사였다.
"여기서라면 성공 여부와 상관 없이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이 마을이 고향이 아니었다면 제가 정이란 걸 배울 수 있었을까요."
박씨는 "선생님도 꿈 중 하나였는데 이렇게 이루게 돼 좋다"며 "주변 어른들의 충고대로 강압적으로 가르치기보다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자세로 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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