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혹의 늪 왜
천안함 침몰사고는 그 자체로 비극이다. 하지만 더 큰 혼돈은 그 후에 찾아왔다. 침몰 원인을 놓고 우리 사회는 편이 갈린 채 논쟁을 벌였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정말 필요한 건설적인 논의는 잊혀졌다. 지금도 "과학적인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없지 않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지난 2일 "(청와대가) 지금이라도 자료를 공개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한다"고 밝히는 등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될 소지도 여전하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제기는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정부 결론 믿지 않는 여론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민군 합동조사단 조사 후 정부가 내린 결론은 "2010년 3월26일 오후9시22분쯤 북한의 연어급 장수정이 발사한 음향추적 중(重)어뢰'CHT-02DX'에 피격돼 침몰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약 6개월만인 2010년 9월 공식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침몰 사고 직후부터 ▦수중어뢰 폭발 후 버블효과로 치솟게 되는 거대한 물기둥을 목격한 생존장병이 없다 ▦어뢰폭발 시 가스버블 내 온도가 3,000~4,000도까지 올라가는데도 어뢰후부추진체 내부에 쓰여진 '1번'이라는 글자가 녹지않고 남았다 ▦어뢰추진체와 천안함 선체 곳곳에서 발견된 하얀 물질이 폭발과 상관없는 풍화작용에 의해 생기는 산화알루미늄이다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군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학계 전문가들이 가세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는 "매직펜 잉크 성분의 비등점은 78.4~138.5도에 불과하다. 폭발 직후 최소 350도까지 올라갔을 어뢰후부추진체에서 잉크가 타서 없어지지 않은 것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송태호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교수(열전달 전공)는 "폭발시 생기는 3,000도 이상의 화염은 단열팽창하다가 0.1초 만에 상온(28도)까지 냉각되는데 이는 바닷물의 수온을 2~3도 올릴 수 있는 정도"라며 "'1번'글씨가 쓰인 후면까지는 열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군 미숙한 소통이 의혹 자초
아직도 일부 국민이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 데에는 군의 책임이 적지 않다. 잦은 번복, 투명하지 않은 정보공개 등 미숙한 대국민 소통이 의혹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사고 당일 합참은 사고발생 시각을 오후 9시45분이라 발표했으나 그 후 일주일 동안 9시30분, 9시25분, 9시22분으로 세 차례나 정정했다. 사고 당일 백령도에서 찍은 열상감시장치(TOD) 영상에 대해서 국방부는 애초 존재사실을 감추다가 언론보도가 나오자 공개했다.
여전히 정부가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는 정보도 많다. 사고 직후 참여연대와 민변 등이 정부에 천안함과 관련된 12가지 세부정보 공개를 요청했지만 '사고당일 교신기록','천안함 정비일지' 등 핵심정보 8가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보안상 이유를 대며 무조건 정보를 통제하기만 하는 군의 태도가 전국민의 관심이 주목된 천안함 사건에서 똑같이 반복됐고, 군 당국이 몇몇 사실을 번복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못 믿겠다"는 여론이 퍼져나간 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년이 지났지만 천안함이 사고당일 무엇을 위해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천안함 침몰은 군이 어떤 사고보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정보를 공개한 사고"라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직후 출동해 백령도 북방에서 북상하는 물체를 향해 함포사격을 했던 속초함이 사격한 물체가 '새떼'인지 '북한 잠수정'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은 여전하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략적으로 사건을 이용한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여야 정치권은 차분한 조사와 대응은 미룬 채 의혹제기 자체를 안보의식의 실종으로 몰아세우거나, 북한군 소행이라는 사실규명을 북풍을 악용하려는 선거전략으로 몰아세우는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사실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 지평선 자체가 각자의 이념에 따라 상당히 달라졌다. 일단 편향이 일어나자 사실을 신념에 따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발생했고, 국론은 화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분열됐다.
국론 분열 어떻게 회복할까
침몰 원인에 대한 논쟁에 매몰되면서 우리 사회는 정말 필요한 논의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편집장은 "천안함 침몰 후 2년이 지나기까지 북한소행이냐 아니냐는 소모적 논쟁에만 매몰돼 북한의 변화된 지휘체계나 무기체계에 대한 규명 등 정작 필요한 군사적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천안함 사건의 재조사 논란이 언제라도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재조사를 요구하는 이들은 "정부의 조사는 발견된 증거에 과학적 근거를 끼워맞춘 의혹이 짙다"며 의혹을 해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종대 편집장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 후 미 항공우주국(NASA)이 사고원인을 발표했지만 미국 내에서 '소련 개입설' 등이 흘러나오는 등 국론이 분열됐다. 이후 미 정부가 중립적 인사로 구성된 '로저스 위원회'를 꾸려 이를 재조사함으로써 논란이 종식됐다"며 논란종식을 위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재조사'는 또 다시 소모적 논쟁만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보를 국내정치에 이용한 권위주의시대 때의 기억 때문에 정부와 군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정부가 100% 옳지는 않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갖고 사회를 다시 혼돈의 상태로 빠뜨리려는 행동은 안보 냉소주의의 표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윤덕용 전 합조단 공동단장(KAIST 명예교수)은 정부가 정보를 과도하게 통제한다는 주장에 대해 "2000년 미군함이 예멘항에서 알카에다의 테러공격을 받고 폭침당했지만, 조사는 미 해군이 자체적으로 진행했고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며 "천안함의 경우 국ㆍ영문 보고서를 내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조사 내용을 공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도 "2010년 9월 나온 합동조사단의 보고서가 공식견해"라며 "더 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국정조사서 부르면 출석할 것"
"과학적 결론은 (1번 어뢰의 공격이 아닌 것으로) 내려져 있다.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말은 틀렸다."
2010년 단행본 , 등을 써서 북한군 1번 어뢰가 침몰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이승헌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기존 입장을 확고히 반복했다. 다만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북한이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1번 어뢰의 증거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학문적 논쟁자리를 피하고 있다는 송태호 KAIST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송 교수 등의 검증 제안은) 포맷도 제한적이었고 조사대상이 돼야 할 합동조사단 관계자들이 주체가 되는 방식이었다"며 "(사실 관계를) 제대로 살필 포괄적 제안은 그들이 거부했다"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최선의 방안은 거짓증언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국회 국정조사"라며 "국정조사에서 부르면 당연히 출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총선후 재조사 반드시 필요"
"정부조사에 의문점이 남는 만큼 총선후 재조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2010년 6월 유엔안전보장 이사회에 한국정부가 내린 천안함 조사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의서한을 보냈다가 보수단체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던 참여연대의 이태호 사무처장은 줄기차게 재조사를 주장했다.
그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이뤄졌고 이후 과학자들이 제기한 이견도 제대로 해명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조사가 4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객관적 조사였다는 합조단 설명에도 이의를 달았다. 그는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도 '한국 정부의 설명을 믿는다'고 했을 뿐 '검증작업을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며 "러시아와 중국까지 포함해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발표에 이의를 제기하자 보수세력들이 국가관, 사상 운운하며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은 문제"라며 "천안함 사고의 진실규명은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은 상식의 회복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재조사해도 결론 같을 것"
"여러 물증과 당시 북한 잠수정의 동향을 보면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는 결론은 명약관화합니다. 재조사를 해도 원인은 달라질 게 없을 겁니다."
민군 합동조사단 과학수사 분과장으로 증거분석 임무를 맡았던 윤종성 예비역 소장은 "과학자들이 제기한 구체적인 논쟁은 좀더 시간을 갖고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과학적 결론을 내려보면 우리가 제시한 원인분석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윤 소장은 조사과정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9ㆍ11 테러가 발생한 뒤 미국에서는 여야 동수로 구성된 위원들이 5년 동안 사건보고서를 만들었다"며 "정파와 이념에 따라 사실을 각각 다르게 보는 우리 현실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합조단 발표가 공교롭게 지방선거 유세일에 발표돼 흠집이 난 점은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2010년 12월 예편, 지난해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이번 학기부터 강단(성신여대 교양교육원)에 서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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