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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모리타니 국민 20%는 아직도 노예신분 생활/ "태어날때부터 중노동…우린 또다른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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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모리타니 국민 20%는 아직도 노예신분 생활/ "태어날때부터 중노동…우린 또다른 동물"

입력
2012.03.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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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 10일 제3차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됐다. 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인권침해를 반성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지만 당시까지 암암리에 명맥을 이어 온 노예제를 공식 폐지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이제 지구상에 노예제가 존속하는 국가는 없다. 하지만 법률 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서아프리카의 모리타니에서는 불법적 인신매매가 아닌, 태어날 때부터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국민이 여전히 존재한다.

물케이르 민트 야르바도 그 중 한 명이다. 물케이르는 모리타니 북부 사막지대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부모의 이름도 모른 채 어릴 때부터 낮에는 곡식 타작과 염소 젖 짜기, 밤에는 온갖 허드렛 일을 하며 중노동에 시달렸다. 노동에 따른 보상은 한 푼도 없었다. 그는 초경도 하기 전에 가축들이 보는 앞에서 주인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렇게 태어난 딸이 걸음마도 떼지 못하고 숨졌는데, 주인은 아이를 묻을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물케이르를 들판으로 내몰았다. 그는 "나는 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또 다른 동물이었다"고 절규한다.

물케이르의 삶은 이 나라에서 사실상의 노예제가 유지될 수밖에 없는 매커니즘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리타니는 1981년 세계에서 가장 늦게 노예제를 없앴다. 그나마 노예를 부리는 일을 범죄로 규정한 것은 2007년에 이르러서다. CNN은 "모리타니 인구 340만명 가운데 10~20%가 자유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먼저 지정학적 환경. 모리타니는 수도 누악쇼트를 비롯, 전국토의 0.2%에 불과한 경작지가 대서양과 접한 해안지대에 집중돼 있다. 나머지는 광활한 사하라사막 지대다. 정부가 지방의 유목사회에까지 통제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가 모리타니에 똬리를 튼 것도 은신이 용이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종교와 인종적 뿌리도 노예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리타니의 지배계급은 화이트 무어인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베르베르족(아랍계)을 통칭하는데, 대대로 사하라사막 이남의 흑인을 노예로 써왔다. 현대판 노예제를 신랄하게 꼬집은 의 저자 케빈 베일스는 "모리타니 노예제의 기원은 아랍인이 북아프리카를 접수한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빈민층 자신이 노예 신분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경제적 대가 없이 일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일부는 명문가의 노예라는 사실을 특권처럼 여긴다. 모리타니에서 노예는 매매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선물로 인식돼 왔다. 출생하자마자 부모와 생이별하는 영아가 부지기수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노예제를 근절하려는 모리타니 정부의 의지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브라힘 울드 메드 엘 모크타르 지역개발 장관은 "모리타니 국민은 모두 자유롭고 노예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최장 10년형에 처할 수 있는 노예금지법이 발효된 이후 기소된 노예 소유주는 단 한 명뿐이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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