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 FC 서울 감독이 지난해 '대행'자격으로 사령탑에 임명될 때만 해도'기대 반, 걱정 반'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데뷔 시즌'형님 리더십'을 앞세워 초보답지 않은 지도력을 선보였다. '대행'꼬리표가 떨어진 올 시즌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지난 해에 비해 한결 여유가 늘었다. 현역 시절 불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던 그가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18일 대전전에서 '기다림의 축구'는 빛을 발했다. 최 감독은 경기 전부터 절대로 조급해하지 말라고 선수들에 신신당부했다. 후반전에 흐름이 서울 쪽으로 넘어올 것이고 그때 골을 넣어 승리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경기는 최 감독의 예측대로 전개됐고 서울은 2-0으로 승리했다. 두 골을 넣은 콜롬비아 용병 마우리시모 몰리나는 "팀에 대한 믿음이 높아진 것이 상승세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지난 시즌 중반까지 부진했던 몰리나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고 기다렸다. 몰리나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펄펄 날고 있다.
최 감독은 19일 전화통화에서 "현역 때 성급하게 덤비고 욕심을 내면 실패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교훈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코치 시절에도 선수들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조급증을 내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다림은 자신감에 근거한다.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기다릴 수 있다. 최 감독은 진정한 믿음은 팀 성원들이 가족처럼 맺어져야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서로를 존중하고 격의 없이 소통해야 똘똘 뭉칠 수 있다는 것이 최 감독의 지론이다. 이 때문에 코치로 입문할 때부터 지금까지 '수평적 소통 관계'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고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시즌 열풍을 일으킨 '형님 리더십'도 이런 수평적 의사 구조에서 비롯됐다.
최 감독이 강조하는 'FC 서울의 정신'은 바로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다시 일어서도록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최 감독이 말하는 '서울의 정신'이다.
그가 생각하는 '최용수 축구'의 키워드는 '환원'이다. 최 감독은 서울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구단과 팬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이를 어떻게든 돌려줘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잠자는 시간 빼고 축구만 생각하는 이유다. 하루 훈련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지만 상대 분석하고, 주말 경기 준비하고, 팀 내 분위기 파악하고, 선수들의 동기를 유발시킬 방법을 고민하면 하루가 후딱 간다.
2승1무를 기록한 서울은 우승 라이벌로 꼽히는 전북 현대(3월25일), 수원 삼성(4월1일)과 잇달아 격돌한다. 시즌 초반 최대 고비다. 그러나 최 감독은 여유만만하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와도 팀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전북전에 관한 질문을 하자 목소리가 확 밝아졌다."참 재미있을 겁니다. 많이 기대가 되네요"라고 여유를 보였다.'끈끈해진 팀 컬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김정민기자 gov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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