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는 말 많이 들으시죠?" 사진기자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추임새처럼 던진 말에, 그는 "꼭 그렇진 않아요"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한 미모 한다는 뜻이 담긴 듯한 이름과 수려한 외모가 만들어낸 거리감이 곧바로 사라졌다.
한가인. 요즘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자 배우가 또 있을까. 인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모으자마자 멜로 영화 '건축학개론'의 개봉(22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성취감과 기대감이 얼굴에 가득한 그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하늘거리는 긴 머리와 살랑이는 오렌지색 플레어스커트로 단장한 그에게서 봄 기운이 한껏 느껴졌다.
한가인에게 '건축학개론'은 8년 만의 영화다. '말죽거리잔혹사'에서 교복 입은 여고생을 보여줬던 그는 첫사랑 남자와 10여년 만에 재회하는 30대 이혼녀 서연으로 스크린 외출에 나섰다. 충무로에선 너무 오랜 공백. "연기라는 게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게 오랜만에 영화를 하게 됐다"는 그는 '건축학개론'과의 기분 좋은 인연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 다닐 때의 추억을 많이 떠올리게 하는 시나리오였다. 오랜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듯한 느낌의 영화"라며 "서연이 그동안 내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나와 가까운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2000년대 학번(그는 2001년 경희대에 입학했다)이 90년대 대학생을 연기하기 꺼려졌을 만도 한데 의외로 그는 "연기하기 편했다"고 답했다. "제가 좀 늙은이 같은 부분이 있어 70~80년대 노래를 좋아하고 집도 한옥에 더 마음이 끌린다"는 게 이유. 그는 영화에서 부잣집 대학생들의 상징어로 쓰이는 '압서방'(압구정 서초동 방배동의 합성어) 정서에도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그쪽은 정서가 안 맞아 못 살 것 같아요. 지금도 전 강북이 좋아 한남동 근처에 살아요. 대리석 깔린 현대식 집은 싫더라고요. 나무 마루가 깔린 집이 좋아요."
서연은 관객들에게 의외성의 즐거움을 안겨줄 듯하다. 한가인이 무심한 듯 던지는 'X년'이라는 욕설이 다소곳한 그의 외모와 비교되며 웃음을 부르기 때문이다. "이용주 감독님은 가장 통쾌한 장면이라고 하는데 그런 재미 때문에 저를 캐스팅하신 것 같아요."
'건축학개론'을 찍자마자 그는 '해를 품은 달' 촬영에 들어갔고, 드라마를 마치자마자 영화 개봉을 기다리게 됐다. 현대 여성과 사극 속 여인을 릴레이로 연기해야 했으니 냉온탕을 오간 셈. 한가인은 "현장 분위기가 너무 다르고 두 작품 사이 기간이 너무 짧아 드라마 초반에 적응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빨리빨리 현장에 적응하는 게 실력인 것 같다"고도 했다.
'해를 품은 달' 출연 초반 일었던 연기력 논란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 것일까. 그는 "(드라마를 촬영하며)현장 스태프 등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고, 정신적으로 확실히 성장했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엔 생각도 많고, 겁도 많이 냈어요. 제가 이번처럼 두 작품을 묶어서 해본 적이 없었는데 쉬지 않고 일하니 오히려 재미있더라고요. 이젠 공백 없이 연기하고 싶어요. 너무 오랜만에 출연하면 대중들의 기대도 크고요. 일상적으로 연기하니 좋더군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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