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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때는 그랬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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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때는 그랬으나…?

입력
2012.03.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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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수호조규 체결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어 있던 1876년 1월 23일, 최익현은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 뒤 도끼를 옆에 두고 대궐 문 앞에 엎드렸다. 내 상소를 받아들이든지, 그러지 않으려면 내 목을 치라는 결기의 표현이었다. 그는 조약 체결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라며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저들이 우리보다 강하니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고 저들의 욕심을 제어할 방도가 없다. 둘째, 저들이 우리에게 팔려는 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 그 양이 무궁하나 저들이 우리에게서 사려는 것은 땅에서 나는 것이라 그 양이 한정되어 있다. 유한한 것과 무궁한 것을 맞바꾸고서 망하지 않을 리가 없다. 셋째, 저들을 통해 서양 종교가 들어오면 도덕과 풍속이 어그러질 테니 나라가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 넷째, 개항하면 저들이 우리 땅에 들어와 살며 갖가지 범죄를 저지를 텐데, 저들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피해 입은 우리 백성의 호소를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억울한 백성이 늘어나면 난리를 피할 길이 없다. 다섯째, 저들은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금수 같은 자들이니, 사람과 금수가 한 데 어울려 있으면서 근심과 염려가 없기를 바라는 건 망상이다.

최익현을 두고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는 고루한 유생이라고 한 사람은 당시에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익현의 예측대로 되었다. 그가 상소를 올린 지 20년도 안 되어 조선 왕조 역사상 겪어본 적 없는 대규모 '난리'(동학농민운동)가 일어났고, 30년 만에 사실상 주권을 잃었으며, 35년 뒤 나라가 망했다.

학교에서 국사 과목을 건성으로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대개 최익현의 이 '지부복궐척화의소(持斧伏闕斥和議疏)'는 안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들이 이 상소문에 대해 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망국의 역사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나라가 망한 이래 두 가지 의문이 한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자리 잡았다가 불쑥불쑥 뛰쳐나오곤 했다. 나라가 망한 건 최익현 같은 사람들이 개방에 반대한 때문은 아니었던가? 나라가 망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음에도, 그리고 사태가 그 예측대로 전개되는 걸 보면서도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21세기에 접어들 무렵, '근대화에는 뒤졌지만 세계화에는 앞서가자' 따위의 구호가 호응을 얻었던 데에는, 망국의 역사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집단적 초조감이 작용했을 게다. 미국과 FTA 협상을 개시하던 때에도, 국민 일반의 의식 한 편에는 FTA가 국제 경제관계의 새로운 표준이 될 거라는 예측, 이번에는 기필코 일본과 중국에 앞서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미 FTA 비준을 전후해서는 다른 트라우마가 고개를 들었다. 한미 FTA가 을사늑약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예측이, 경제영토를 넓힘으로써 선진화의 초석을 놓는 길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대립했다. 이미 한미 FTA가 발효된 이상 누구나 뒤의 예측이 맞기를 바라겠지만, 4대강으로 창출될 일자리가 34만 개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G20 경제효과가 수십 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한참 빗나가지 않았던가? 그때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예측이나 그때는 그랬으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예측 모두 역사가 남긴 집단 트라우마와 결부된 담론이다.

최익현이 상소를 올린 지 20여 년 뒤인 1898년, 서울 상인들이 모두 모여 정부에 외국 상인을 도성 밖으로 쫓아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독립신문은 "이미 조약을 맺었는데 약한 나라가 무슨 수로 조약을 어기겠는가, 그럴 시간에 경쟁력이나 키워라"라고 꾸짖었다. 10~20년 뒤 이와 비슷한 장면이 반복될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태가 낙관적 예측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 그 진전을 중단시키거나 되돌릴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불길한 예측대로 진행된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낙관적 예측만을 믿으라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안감을 떨칠 수 있는 안전장치 없이 한미 FTA의 새 시대를 맞았다.

핸들도 후진기어도 없는 자동차에 몸을 실은 듯한 이 느낌도 트라우마 때문일까?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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