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24일 오후 2시20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 5명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급습했다. 휴대폰 가격을 정상가보다 20만~30만원 부풀려 공급한 뒤 대폭 할인해주는 것처럼 고객들을 유혹하는 편법 상술에 대한 조사였다. 하지만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 조사관들은 삼성전자 정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보안담당자와 용역업체 직원 10여명이 조사관들을 에워싸고 "규정상 사전 약속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조사관들이 진입을 위해 몸싸움을 벌였지만 용역 직원들을 당할 순 없었다. 결국 공문을 보여주고 담당자와 연락하느라 50분을 허비하는 동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직원들은 박모 전무 등의 지시에 따라 컴퓨터를 새 것으로 교체하고 종이 문서를 파쇄기에 갈아 없앴다. 조사관들이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혐의를 잡을만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이틀 뒤 회의를 열어 "(공정위의) 무단침입에 잘 대응했다"며 용역 직원들을 칭찬했다.
공정위는 18일 삼성전자의 조직적인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전자 법인에 3억원, 조사방해를 지시한 임원 2명에 각 5,000만원 등 총 4억원이다. 역대 최고였던 CJ제일제당의 밀가루가격 담합 조사방해(3억4,000만원)보다 6,000만원 많은 액수다.
공정위가 역대 최대 과징금 칼을 꺼내 든 이유는 삼성전자가 사전 시나리오와 고위 임원들의 조직적인 지휘 아래 조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했고, 조사방해 이후 공정위 조사를 더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보안지침을 강화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기 때문이다. 삼성 계열사들이 1998년 삼성자동차의 임직원 상대 차량 강매행위 조사를 비롯, 그간 수 차례에 걸쳐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상습범'이라는 점도 반영됐다.
공정위는 향후 상습적인 조사방해 기업을 중점 감시대상으로 선정하고 배후 조종 임직원에겐 징역형을 적용하는 등 최대한 엄벌할 방침이다. 6월부터 시행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2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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