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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저리 가라, 점집 몰려드는 수원 화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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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저리 가라, 점집 몰려드는 수원 화서문

입력
2012.03.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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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서울 성북구 미아리고개 주위에는 100여 개의 사주업소가 성업하며 전국 최대 규모의 '미아리 점성촌'을 이뤘다. 하지만 재개발로 지금은 동선동에서 20~30개 업소가 명맥을 잇는 수준이다. 이제 전성기 때의 미아리에 버금갈 점성촌이 경기 수원시에 형성됐다. 정조의 꿈이 서린 수원화성의 서쪽 문인 화서문(華西門) 일대다.

16일 오후 화서문에서 화성행궁으로 연결되는 화서문로 양쪽으로 빨강 파랑 흰색 깃발을 내건 사주업소들이 줄줄이 눈에 띄었다. 간판에는 신내림 받은 이들이 쓰는 '보살' '장군' '선녀' '동자' 같은 별호들이 그득했다. 이곳 토박이라는 한 노인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서 이제는 한 집 걸러 하나씩 보살과 선녀들만 사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이곳에 사주업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선 것은 5~6년 전부터다. 다른 지역에 비해 보살과 선녀들이 유독 많은 편이지만 철학관, 암자, 사찰 등 사주업소 종류는 다양하다. 얼마 전까지는 2층 건물에 '퇴마사'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던 업소도 있었다.

사주업계는 음지에서 활동하며 서로 간 왕래가 일절 없는 게 특징이라 정확한 업소 숫자 파악은 어렵다. 다만 관할 행궁동주민센터가 지난해 여름 자체 조사해 파악한 업소 수는 대략 120개. 주민센터의 한 관계자는 "워낙 자주 생겼다 없어지곤 하지만 아직도 100개 정도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796년 완성된 수원화성 자체가 오래된 건축물인데다 팔달산을 등지고 있어 화서문 일대는 무속인들이 선호하는 소위 영기(靈氣)가 센 곳으로 꼽힌다. 여기에 화서문은 과거 화성 밖으로 시신을 옮기던 문으로 알려져 죽은 이와 소통한다는 무속의 성격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저렴한 임대료와 민원이 적다는 점이다.

화성 성곽 안쪽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안되고, 수원시의 화성 복원 사업에 의해 언제 건물이 헐려 떠나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건물은 낙후하고 유동인구는 갈수록 줄어 상가를 내놓아도 들어오려는 업종이 없다. 선녀라는 호칭을 가진 무속인 A씨는 "서울에서 안양을 거쳐 한 달 간 가게를 구했지만 건물주인들이 꺼려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B보살업소 관계자는 "굿 등을 할 때 소음발생이 불가피하지만 거주인구가 적고, 업소들이 몰려 있어 소음에 대한 저항이 적은 것도 좋은 점"이라고 밝혔다.

행궁동주민센터는 몇 년 전 마을지도를 제작할 당시 사주업소들이 몰려 있는 곳을 '사주거리'로 표시했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쳐 철회했다. 사주업소들이 들어오는 것을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았어도 사주거리로 낙인 찍히는 것에는 반발하는 주민들의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건물 주인 입장에서는 가게를 놀리느니 사주업소라도 들여서 세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증금 300만원에 30만~40만원의 선월세를 내고도 들어오려는 이들은 이제 무속인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주업소는 행정기관 신고나 허가 없이 열 수 있어 최근에는 오래 빠지지 않는 전셋집을 무속인들에게 세주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김모(60ㆍ여)씨는 "뚱땅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고, 동네 분위기가 이상해져 달갑지 않아도 월세를 내는데 어쩌겠냐"며 "화성 복원사업이 2020년까지 계속된다는데 그때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몰라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원=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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