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 임석재 지음/인물과사상사·520쪽·2만2000원
처음 지어질 때부터 인간의 몸을 모델로 삼았던 건물은 부위별로 몸의 형태를 본떴다. 골조는 인간의 뼈대를, 배선은 혈관을, 설비는 내장을. 몸과 건축의 관계가 이론적으로 서양에서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80~1990년대로, 철학자 푸코와 메를로퐁티의 반성철학을 건축에 적용시킨 서적이 출간되면서다. 그러나 세계 경제 침체로,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건축계 역시 위축되면서 연구 또한 시들해졌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임석재 교수가 몸을 닮은 건축을 다시 꺼내 들었다. "사람이 몸을 보는 시각은 자기가 사는 집에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이것을 모으면 한 사회의 건축 현상이 된다"는 그는 <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 을 통해 우리가 우리 몸을 기계 부품처럼 대하는 시각의 연원을 추적해간다. 그는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시대별 건축 양식의 흐름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기계가>
과거 건축의 형태는 지붕이 하늘을, 기단이 땅을 상징하며 건물 본체는 자연 만물과 인간 사회를 상징하는 천-지-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전일론과 인간의 몸과 정신이 일치한다는 일원론의 영향을 드러낸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뛰어난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런 시각을 완전히 뒤집으며 건축의 역사 또한 바뀌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해부도 '혈관의 나무'다. 다 빈치는 인체 조직에서 혈관과 신경만 부분적으로 뽑아내 기계적 작동 원리를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해부도를 완성했는데, 인간의 몸을 기계와 동일시하는 이 시각은 현대 건축 거장들에게 고스란히 옮겨갔다.
육면체로 건축의 단순화를 꾀한 르 코르뷔지에의 사보아 빌라는 현대 건축의 표준을 제시한다. 지붕과 기단의 단순화로 얻은 것은 텅 빈 상자와 같은 공간. 이런 형태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인 이가 미스 반 데어로에로, 평평한 지붕에 기둥을 감춘 채 유리벽과 텅 빈 본체만 남겨 '투명 유리어항'에 비유된다.
저자는 이러한 건축의 형태가 "모든 건축적 가치가 면적으로만 환산되는 오피스 빌딩, 현란한 장식 환경으로 가득 채우고 소비와 직결시켜 부를 축적하려는 현대 상업 공간이 모두 여기에서 파생되었다"며 현대 건축 양식의 폐해를 지적한다.
책은 현대 건축을 미화하거나 오랜 건축 역사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태도를 넘어선다. 인간이 몸으로 부대끼며 만들어온 문명과 그 안에서 발생한 폐해의 원인을 건축적 시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롭다. 신화, 철학, 역사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관점은 건축이 인문학의 중요한 축임을 보여준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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