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중 자기 월급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지간한 연봉을 받는 중산층도 월급에서 세금, 연금을 제하고 교육비, 의료비 등을 지출하다 보면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다고 볼멘 소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앓는 소리’에도 정도가 있는 법. 매년 3억~4억원의 연봉을 챙기는 사람이 “월급이 적어 살기 힘들다”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면 어떨까? 공감을 얻기는커녕 배부른 소리라며 되레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수십만 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잇달아 언론 인터뷰나 블로그 등을 통해 “이 월급으론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투덜거린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거센 지탄을 받고 있다. 그들의 심정은 절박했을지 모르지만, 지난해 반 월가 시위 이후 상위 1%의 탐욕에 대한 비난 여론이 어느 때보다 거센 상황에서 이들의 외침은 전혀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공분을 산 대표적 고액 연봉자는 월가에서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는 앤드루 쉬프다. 1년에 35만달러(3억 9,400만원)를 받는 쉬프는 최근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세금 연금 보험을 제하고 나면 실제 받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코네티컷에 여름 별장을 4개월간 임대해야 하는데 한 달밖에 빌릴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쉬프의 ‘망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보너스가 줄어 연간 3만 2,000달러(3,600만원)에 달하는 딸의 사립학교 학비도 어렵사리 내고 있다”며 “우리 식구는 식기세척기도 없는 1,200제곱피트(33평)의 좁은 아파트에서 억지로 살아간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이 근처에서 살만한 집을 구하려면 150만달러는 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블룸버그 기사에 등장한 다른 월가 종사자도 도마에 올랐다. 회계법인 파트너로 일하는 앨런 들러개쉬는 “돈 없는 사람들은 (보너스가 줄어드는)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사립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의 전학을 고려하는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당연히 이들의 발언에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인 평균 연봉(5만달러)의 7배를 받는 쉬프의 하소연을 두고 “상위 1% 중에서 빈자겠지”라는 조소가 터져 나왔다.
미국에서 고액 연봉자들이 개념없는 발언으로 공분을 산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시카고대 법학과의 토드 핸더슨 교수는 “연봉 25만달러(2억 8,130만원)로 근근이 살아간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런 사례를 ‘철없는 부자의 푸념’이라는 일회성 해프닝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부자가 질시 대신 존경을 받아 온 미국 사회에서 고액 연봉자의 입지가 좁아지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현재 미국인의 15.1%가 빈곤 한계선 이하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고, 65세 이상 미국인과 35세 이하 미국인의 세대간 빈부 격차는 30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1989년 33%이던 부유층 자녀 대학 졸업률이 2007년 50%로 급증하는 동안 빈곤층 자녀 졸업률은 5%에서 9%로 개선되는데 그치면서 교육 분야의 빈부격차도 심각해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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