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증거인멸에 청와대가 개입한 흔적이 속속 드러나면서 검찰이 결국 '재수사' 방침을 정하자, 2010년 검찰의 이 사건 수사과정을 둘러싼 의문점들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2010년 7월5일 국무총리실의 수사의뢰와 함께 시작돼 65일 만에 마무리됐던 이 사건 수사를 돌이켜 보면 석연치않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검찰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검찰이 불법사찰 본거지인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한 시점은 나흘 뒤인 7월9일이었다. 핵심 피의자들이 수사에 대비할 수 있도록 나흘이라는 적지않은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실제로 불법사찰의 온갖 증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압수수색 이틀 전인 7월7일 복원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됐다.
'뒷북 압수수색'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검찰은 "기록 검토, 압수수색영장 작성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최대한 빨리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무원들이 설마 증거인멸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수사의뢰에 앞서 언론 보도가 있었던데다, 총리실의 자체 진상조사가 끝나면 결국 검찰로 사건이 넘어올 게 뻔히 예상됐다는 점에서 검찰은 사전에 압수수색을 준비했어야 마땅했다는 지적이다. 국가기관의 민간인 불법사찰은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국기 문란' 범죄라는 점을 감안하면, 증거인멸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도 검찰의 안이한 상황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검찰은 특히 수사 진행 도중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늘 주춤거렸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비선 보고라인'으로 지목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이메일 압수수색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는데도 재청구를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증거인멸 실행자인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건넨 이 전 비서관의 직속 부하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의 휴대폰 통화내역 조회도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됐다는 이유로 한 차례만 시도하고 그대로 접었다.
검찰의 소극적 태도를 드러낸 결정판은 최 전 행정관에 대한 '출장 조사'였다. 검찰은 당시 이미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장 전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빌려준 최 전 행정관은 당일 저녁 이를 돌려받은 뒤 한 달 후 해지할 때까지, 이 전화로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과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진 전 과장은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인물로, 최 전 행정관과 행정고시 동기다.
이런 정황상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에 어떻게든 관여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인데도, 검찰은 소환조사가 아니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그를 참고인 조사하는 것으로 끝냈다. 수사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검찰이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강공책을 쓰지 않은 것 같다"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검찰 수사 때 불거졌던 이 같은 의문점들은 최근 장 전 주무관의 폭로를 염두에 두면 어느 정도 풀린다. 2년 전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침묵했던 장 전 주무관은 이달 초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하면서 '민정수석실, 검찰과 모두 얘기를 끝낸 것이다. 검찰이 나에게 절절맨 것은 내가 죽으면 재수사, 특검 갈 수밖에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물론 최 전 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을 안심시켜 입을 막으려는 의도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폭로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재수사를 통해 청와대의 개입이나 검찰의 축소수사 흔적이 조금이라도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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