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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극적 삶을 옹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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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소극적 삶을 옹호함

입력
2012.03.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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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 좀 가져봐. 얼마 전 친구가 해준 말이다. 너무 많은 정치인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총선과 대선에 대한 전망과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히다가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게 한심하다는 듯 충고했다. 나는 친구에게 내가 얼마나 정치적인가에 대해 설명했다.

정치인들에 대한 관심은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나는 우리 삶의 지형도를 끊임없이 그려보고 못마땅해 하며 실천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실천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신도시에 거주하기 시작했을 때 문화시설이 전무했던 동네에서 구멍가게 만한 사설도서관을 용감하게 만들어 운영했던 한 시절의 이야기며, 제도권 바깥으로 밀려나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로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가장 적극적인 지지를 자처했던 시간강사 시절의 이야기며, 단 한 번도 스스로 나선 적은 없으나 소외된 사람 곁으로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친구를 도왔으며, 목소리를 드높인 적은 없으나 사회적 약자의 편에 기꺼이 서서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파해왔으며,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들을 고단하리만큼 끊임없이 찾아다녔음을 강조했다. 비주류 비상업 출판물과 영화와 음악 들을 고집스레 소비해온 취미생활 등등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나의 지난했고 지난하며 지난할 '인생역정'은 매우 정치적인 실천이지 않느냐고 소심차게 주장했으나, 친구는 나를 한 마디로 요약했다. 넌 너무 소극적이야.

건축에서 소극적인 주택이라는 뜻의 'passive house'라는 용어가 있다. 생태건축에 쓰이는 이 말은, 냉난방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기후를 견디게 해주던 기존주택 개념의 반대 의미로 쓰인다. 냉난방 장치의 적극적 사용을 배제한 채로 열전도율을 최대한으로 줄여 실내 열효율을 높이는 방식, 즉 아무 방식도 사용하지 않는 방식을 뜻한다. 우리의 주거공간이 적극적으로 추위와 더위를 피하려다 오히려 낭비와 건강하지 못한 삶과 환경파괴에 노출돼 있다는 반성적 대안 개념이다. 기존의 적극적인 주택개념의 역방향으로 제시된 또다른 적극성인 셈이다.

너나할 것 없이 자기발언을 할 수 있는 SNS의 시대다보니, 억울한 일을 당하면 곧장 인터넷에 글을 올려 여론을 만든다. 채선당 사건에 국물녀 사건에 너무 많은 적극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의견을 보태 진위파악이 되기도 전에 누군가를 매도한다. 유명 정치인의 사진이 크게 실린 정치면 기사의 댓글은 적극적인 정치적 입장을 내세워 도무지 같은 나라의 같은 국민인 것 같지 않게 적극적으로 서로를 매도한다. 나처럼 소극적인 사람에게는 모두가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고 동시에 폭력배처럼 보인다. 어쩌다가 정의감의 적극적 표현이 폭력에 가까워지게 되었을까.

소극적인 태도는 물론 절박한 현실 앞에서는 무능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누가 일부러 무능을 자처하겠는가. 한 발짝 비껴 서서 남들보다 조금 더 회의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고민할 뿐이다. 소극적 삶도 적극적인 삶과 다른 층위에서의 적극성을 지녔다. 소극적 삶은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말하고 말한 만큼을 책임지는 삶이다.

갑갑한 제도권에 작은 구멍을 내는 일은 짐작보다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적극적인 사람에 비하면 다소 비관적이어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세상은 큰 물줄기를 바꾸는 사람도 필요하고 작은 물줄기를 내는 사람도 필요하다. 작은 물줄기를 내는 사람은 아주 많이 필요하다. 너무나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신념에 찬 영웅들이 오히려 세상을 망치는 경우를 주목해온 나는 조금 더 비관에 기울고 싶다. 신념보다는 의심을 더 발달시키고 싶다.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할 시간에, 정의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와 정의감은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에 대해 복잡하고 세세하게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싶다. 그러다 가느다란 한숨처럼, 내 몫의 소극으로 내 깜냥의 숨통을 구멍처럼 숭숭 내면서 살아가고 싶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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