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은 전용면적 85㎡가 기준이다. 정부가 법으로 정해놓고 있는 만큼 이해 당사자에겐 혜택이 쏠쏠하다. 기준 이하의 주택을 짓는 건설사엔 국민주택기금이 저리로 건설비용을 빌려주고, 분양자는 취득세 감면 등의 각종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1973년 도입된 뒤 40년 가까이 한국 주택면적의 '표준'자리를 지켜오던 이 기준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가구 분화 등으로 크게 감소한 평균 가구원수 등을 근거로 서울시가 기준의 하향 조정(65㎡)을 정부에 건의하자,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발끈하고 있다. 65~85㎡ 사이의 주택 공급이 위축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양 측은 한 달 가까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있다.
전문가들의 시각도 갈라진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2005년 발코니 확장 허용 등의 정책 변화로 전용면적 85㎡의 국민주택의 실제 거주공간은 128㎡까지 확대된 만큼 국민주택규모 축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택이 부족하고 가구원수가 줄어든 만큼 기준 규모 축소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오동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주거소비면적은 늘기 마련이며, (소형)주택 공급확대가 목적이라면 65㎡ 이하 주택에 대한 각종 지원을 늘리면 해결된다"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출산장려정책으로 향후 가구원수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가구원수 감소를 근거로 한 국민주택 규모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찬성/ 평균가구원수 줄고 주택 과부족은 심화
1972년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현 주택법)에 도입된 국민주택은 국민으로서 적정한 주거적 삶을 사는데 적합한 '표준적 규모'와 대량 공급을 위해 정책적 자원을 집중시켜야 할 '대상집단'이란 두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40여년이 흘렀지만 국민주택의 뜻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구성요소는 크게 바뀌었다. 우선 가족 크기의 변화다. 1972년 법 제정 당시 평균 가구원수가 5.37명이었지만 2010년엔 2.69명으로 반으로 줄었다. 가구의 소형화는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이에 견주어 그간 주택공급은 중대형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결과 가구형태와 주택형태 간에 부조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령, 서울시의 1~3인 가구는 전체의 69%를 차지하고 있지만 소형가구에 적합한 60㎡이하 주택은 전체의 37%에 불과하다.
90년대 후반 영국에선 '향후 30년간 신규주택 400만호 공급'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복지국가 시절 대량 공급했던 4인 가구용 '가족주택'이 급증하는 독신가구 등의 주거패턴과 맞지 않으면서 대두한 논쟁이었다. 한국의 최근 주택정책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가구의 빠른 소형화 등으로 40년 전 기준인 국민주택 관련규정의 변경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서울시가 국민주택 규모를 1~3가구에 적합한 65㎡로 낮추어 줄 것을 중앙정부에 건의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와 반론이 만만찮다.
국민주택 규모(85㎡)는 전용면적으로 25.7평이고 공급면적으로 32~34평에 해당한다. 4~5인 기준에 맞춰 거실 외에 침실이 2~3개 갖춰진 규모다. 2005년부터 허용된 발코니 확장부분 등을 포함하면 전용면적 85㎡의 실제 거주공간은 최대 128㎡(38.8평)까지 나온다. 이 정도의 규모는 1~3인 가구가 살기에 너무 크다. 가격 또한 크게 올라 저렴 분양주택을 바라는 청약저축통장 가입자들이 부담하기에 벅차다. 가구의 소형화와 고가주택의 시대, 30평대의 아파트를 국민표준주택으로 삼는 것은 주택의 과소비를 정책적으로 부추기는 꼴이 된다.
국민주택이 정부가 공급하는 분양주택 규모의 중심이 됨에 따라 2009년까지 공급된 공공주택의 절반이상이 32~34평대(국민주택)였다. 이는 보금자리주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규모가 큰 주택에 정책혜택이 집중되면 한정된 토지에서 주택공급 늘리기가 힘들어진다. 선진국에 비해 도시적 용지가 크게 부족한 우리의 경우, 소형화는 기성토지를 집약적으로 활용하는 핵심 방식이다. 가령, 85㎡ 주택 1만 호를 지을 땅에 65㎡ 주택을 짓게 되면 공급량이 30% 이상 늘어난다.
혹자는 국민소득이 늘면 주택규모도 커지기 때문에 국민주택기준을 굳이 축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2011년 한국의 일인당 주거용 면적은 36㎡이다. 이는 2002년 프랑스와 독일 수준에 가깝다. 소득향상에 따라 국민주택 밖의 주거면적은 계속 늘 것이다. 그러나 정책자원을 집중해야 할 '주된 주택의 규모'를 막연한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 도시적 용지부족 문제를 떠나, 에너지 효율적인 콤팩트 소형주택의 공급은 저탄소 녹색도시를 지향하는 선진도시들의 주택정책이다. 주택이 과부족하고 고가이며 가구가 빠르게 소형화되고 있는 한국의 도시상황에서 소형ㆍ저렴주택의 공급확대는 더욱 피할 수 없는 한국적 주택정책의 선택이다.
국민주택기준의 하향조정을 반대하는 측은 20여 가지 제도를 일시에 바꿀 없다는 이유를 으뜸으로 꼽고 있다. 필요하면 소형주택을 더 지으면 되고 세제 해택 등을 더 늘리면 되지 기준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점도 중요하게 꼽는다. 하지만 이런 유의 이유들은 어떤 경우라도 국민주택의 기준변경을 반대하는 빌미가 될 수 없다. 40년 전 급격한 성장기 도시근교의 처녀지에 공장식 주택을 대량 공급할 때 도입된 '국민적 표준주택' 기준이 주택의 패러다임이 바뀐 지금도 유효하다는 강변은 과연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국민주택기준의 변경문제는 국민의 보편주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철학 문제이면서 서민 주거복지를 어떻게 푸느냐의 실천 문제이기도 하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 반대/ '국민주택=최저주거수준' 해석은 곤란
'국민주택'이란 1973년부터 도입된 개념으로 국민주택기금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건설ㆍ개량되는 주택으로서 전용면적이 85㎡이하인 주택을 말한다. 국민주택규모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지향해야 할 주거수준으로 보아야 할 일종의 기준이자 목표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저소득층에게 어느 정도의 주거수준은 보장해야 겠다는 의미의 '최저주거수준'과는 다르다.
국민주택규모인 전용면적 85㎡를 도입할 당시에는 1인당 필요 주거면적(16.5㎡)과 평균가구원수(약 5명, 1975년) 등을 고려해 산정했다고 한다.
최근 가구원수는 감소하였으나 소득 증가 및 생활수준 향상 등으로 주거면적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가구당 필요면적은 현재 수준과 비슷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또 경기침체 상황에도 불구하고 청약경쟁률이나 희망주택면적을 보면 최근 국민들의 85㎡ 규모 주택에 대한 선호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상승해간다면 당연히 주거소비(1인당 평균거주면적)도 증대될 것이다. 그 동안 우리의 주거소비면적은 증가되어 왔고 선진국의 예를 보면 앞으로도 우리는 분명 그럴 것이다. 현재 우리의 주거수준을 나타내는 1인당 주거면적(28.5㎡)은 미국(74.3㎡), 영국(44.0㎡), 일본(42.3㎡)에 비해 아직 낮은 수준으로 주거복지 향상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선 미래지향적 목표설정이 타당하고 필요하다고 본다.
국민주택규모 축소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소형주택수요 증가에 맞춰 국민주택규모를 축소시킨다면 현재 청약통장과 공공주택 청약기준 등이 국민주택규모 기준으로 돼있어 혼란의 우려가 있다. 굳이 관련법을 바꿔 동 규모를 축소시키지 않고도 현행 제도로 충분히 소형주택 지원이 가능하다. 국민주택규모 축소는 주거수준 상향 목표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산화 가능계층이나 4인 이상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규모의 주택 (축소된 국민주택규모~85㎡)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게 돼 공급 위축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으로 쾌적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양질의 주택재고를 충분히 확보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1, 2인 가구의 증가로 소형주택 수요가 늘고 있어 진정 소형주택 집중지원이 필요하다면 현행 국민주택기금 지원기준 등을 주택유형, 규모 등에 따라 차등화해 탄력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특히 지역여건 등에 따라 필요한 경우 지자체가 인허가나 심의 과정에서 소형주택 건설을 요구하거나 유도하는 방식을 운영한다면 가구분화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응할 수 있다. 늘어나는 소형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주택규모를 조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출산장려정책으로 말미암아 인구와 평균가구원수가 다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또 늘리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논란과 사회적 비용이 드는 만큼 국민주택규모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
1인당 소득수준과 경제규모가 점차 증대되어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근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에서는 주택시장 진입가능계층과 주택시장 소외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전자를 위해선 소득상승과 주거소비상승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타당하므로 국민주택규모 축소 주장은 국가선진화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후자를 위해선 오래된 집에서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주거복지정책을 수립해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재고주택의 평균수명은 영국 141년, 미국은 103년, 프랑스는 86년 등으로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길다.
결론적으로 국민주택규모의 진정한 의미와 기능, 인구ㆍ가구구조 및 주거수요 변화, 재고주택 현황, 국가정책 목표 등을 고려할 때 국민주택규모 축소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특히 향후 주거의 질에 대한 관심 증가,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편의설비 증가 등으로 주거면적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이므로 지속적인 가구원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국민주택규모를 현행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할 것이다.
오동훈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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