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연극 배우가 간간이 TV드라마에 얼굴을 비치며 인상적인 조연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야 흔한 일. 문제는 역할이다. 2010년 '신데렐라 언니'에서 송강숙(이미숙)의 내연남 털보 장씨로 처음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서현철(47)은 이후 몇 편의 단역에서 "사람 죽이고 때리는" 연기를 했다. 인기 사극 '해를 품은 달'에서도 주인공 훤과 대립관계에 있는 윤대형 패거리의 일원인 심산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의 전공은 따로 있다. 연극 꽤나 봤다는 이들에게 서현철은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는 코미디 연기의 대명사다. 11일 그를 대학로에서 만났다.
서현철은 1일부터 프랑스 원작의 코미디 연극 '게이 결혼식'에 출연 중이다. 바람둥이 앙리가 결혼 후 1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거액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친구와 짜고 게이 부부 행세를 하는 내용으로, 그는 앙리의 아버지 에드몽으로 나온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반전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제작자가 출연 다짐부터 받고 나서야 대본을 주더군요. 무조건 해야 한다면서.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간 코미디를 많이 해 왔으니 초연하는 작품에 힘을 보태라는 의미겠죠."
5월에 재공연하는 2006년 초연작 '노이즈 오프'에도 다시 출연한다. 역시 연출자의 특별한 당부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배역 자체보다 팀 분위기를 이끄는 선배로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고 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제가 코미디 전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정보가 많지 않았으니 에너지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햄릿' 같은 역할만 생각했지. 물론 나는 의식하지 못했던, 그러나 나만 갖고 있는 감각이 있다면 그게 바로 재능일 수 있겠다는 걸 지금은 알죠."
제화업체 직원이었던 그는 서른 살에 연기를 시작했다. 직장 생활 3년 만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이 끔찍해졌고 때마침 취미 삼아 나가던 국립극장의 일반인 대상 연극 강좌에서 희망을 봤다. 업무 인수인계를 채 마치기도 전 트렌치 코트 차림으로 대학로 극단을 드나들었던 그는 초기작 몇 편을 제외하곤 줄곧 코미디에 출연해 왔다.
최근 그가 TV 활동을 병행하게 된 것도 코미디 연기의 명성 덕분이다. 공연 관람 후 연락해 오는 TV 관계자들이 늘어 꾸준히 드라마에 얼굴을 내밀고 있지만 정작 장기인 코미디 연기는 아직 선보인 적이 없다. 그는 "매체 연기는 아무래도 이미지나 목소리 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듯하다"며 "웃기고 싶은데 점잖게 연기하려니 좀 갑갑하긴 하다"고 했다. 제작진과의 미팅 후 배역이 바뀐 것도 수차례. '신데렐라 언니'에서는 강성진이 연기했던 효선(서우)의 삼촌 양해진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해를 품은 달'도 마찬가지. 같은 윤대형 패거리이지만 똑똑한 심산이 아닌 조금 모자란 윤수찬 역할을 제안 받았다.
"요새 촬영장에서, '대학로에서 되게 웃긴다면서요. 믿어지지 않아요' 하는 말을 종종 듣죠. 그래도 새로운 시트콤 출연 이야기도 오가고 있고 진지하지만 따뜻한 면이 있는 형사 반장으로 조만간 영화에도 나올 거니까 기회가 많이 있겠죠."
그의 코미디는 애써 만드는 과장된 몸짓이나 말투와는 거리가 먼 자연스러움이 특징이다. "희극과 비극 연기는 다르지 않다. 진지하게 연기해도 상대의 대사에 0.5초 빨리 답하느냐 늦게 응수하느냐에 따라 웃음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게 그가 생각하는 코미디 연기의 노하우다.
배우로서 그가 그리는 미래도 이런 웃음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웃음은 상대와의 정확한 호흡과 타이밍에서 발생하죠. 모든 게 다 사람이 만나 하는 일이잖아요. 전 그래서 연기에 지나치게 욕심내는 '잘하는 배우'보다 '좋은 배우'로 남고 싶네요. 최선을 다하되 무대를 즐겨야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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