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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션계 대모의 "원더풀"… 날개 단 제일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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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션계 대모의 "원더풀"… 날개 단 제일모직

입력
2012.03.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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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프랑스 파리의 에스빠스 드 블롱 망또 실내체육관. '2012 가을ㆍ겨울 컬렉션'에 참가한 제일모직 브랜드 '준지(JUUN,J)'의 패션쇼가 열렸다. 이 곳에 한 중년 여성에 패션관계자들의 눈길이 쏠렸다.

수지 멘키스. 프랑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20년 넘게 패션전문기자로 활약한 인물로, 그가 어떤 평을 내리느냐에 따라 컬렉션에 참가한 디자이너의 운명은 달라진다. 파리 패션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세계 패션계의 대모'란 별명까지 붙었다.

그는 패션쇼 시작 30분 전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파리컬렉션은 한 시간에 10여개의 패션쇼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빡빡한 일정으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쇼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지 멘키스가 등장했으니 패션쇼장은 술렁이기에 충분했다.

'준지'는 제일모직 정욱준 디자이너의 작품. 정 디자이너는 올해로 10번째 파리컬렉션에 서는데, 수지 멘키스가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그가 어떤 평가를 내릴까. 정 디자이너는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수지 멘키스는 "믿을 수 없는 부피감을 통해 '준지'는 군복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는 분명 패션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1980년대를 재현한 테마 안에서 흰색 셔츠나 스웨터 등으로 강하면서도 단순한 작품도 함께 선보였다"는 호평을 신문에 기고했다. 이후 정 디자이너의 옷은 미국 프랑스 호주 중국 벨기에 등 16개국 27개 매장과 거래가 성사됐다.

지난 4일 '구호(KUHO)'로 유명한 제일모직의 간판 정구호 디자이너도 자신의 브랜드 '헥사바이구호'로 파리컬렉션에 첫 도전했다. 정구호 디자이너가 파리컬렉션에 도전이 가능했던 건 뉴욕에서의 맹활약상 때문.

그는 뉴욕컬렉션에 입성하기 전 한 통의 이메일을 썼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디자인 컨셉트와 컬렉션 등을 설명하며 꼭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는 뉴욕 패션계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쇼 무대를 다시 꾸며야 할 정도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별 기대하지 않고 쓴 이메일이었는데, 기적과도 같이 만나자는 답신이 왔다. 정구호 디자이너는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갔다. 안나 윈투어는 '헥사바이구호'에 대해 "옷감과 재단이 훌륭하다. 컨셉트도 흥미롭다"는 호평을 쏟아냈다.

이후 뉴욕컬렉션에 선 '헥사바이구호'에 대한 평가는 확 달라졌다. 뉴욕의 유명 편집매장인 '뉴욕 IF부띠끄'와 '오프닝 세러머니'에서 입점해 달라는 러브콜이 쇄도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직설적인 혹평으로 유명한 안나 윈투어의 입에서 호평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정구호 디자이너의 옷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고 풀이했다.

제일모직 브랜드의 세계화는 이 회사를 이끄는 이서현 부사장(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의 꿈. 뉴욕과 파리 패션가 입성을 통해 첫 단추는 확실히 끼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사 관계자는 "뉴욕과 파리는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다. 단지 디자인과 품질이 좋다고 해서 입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패션쇼에 서거나 매장을 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영향력 있는 인사의 말 한마디가 가장 중요한데 바로 그 관문을 통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토종 브랜드가 상업적이고 실용적 성향의 뉴욕, 예술성을 선호하는 파리에서 모두 통했다는 건 우리나라 패션사의 큰 사건"이라며 "세계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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