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 A씨는 최근 호텔로 출근하는 일이 잦다. 평소엔 거의 들를 일이 없던 터라 모든 게 생소하고 난해하다. 빈 방은 없는지, 서비스는 만족스러운지, 음식은 맛있는지, 고객들의 동선은 편안한지, 주변 경쟁호텔의 사정은 어떤지 꼼꼼히 따진다. 가끔은 투숙도 직접 한다. 거액이 들어가는 회사의 장기 프로젝트라 신중하다. 그는 "펀드매니저가 아니라 호텔매니저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오피스빌딩→미분양아파트→기숙사→?' 돈 냄새는 귀신같이 잘 맡는 자산운용회사들이 움직이고 있다.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동산시장의 탈출구로 호텔이 뜨고 있다. 캠퍼스 전세대란 분위기를 틈타 내놓은 기숙사펀드가 재미를 보자 또 다른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호텔펀드는 자금을 모아 새로 호텔을 짓거나 오피스빌딩ㆍ쇼핑몰을 호텔로 개조하는데 투자한다. 덩치가 크고 투자기간도 긴데다, 관광객 대상이라 세계경제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펀드매니저들은 "명동에 나가보라"고 말한다.
실제 979만명의 외국인이 찾은 지난해 국내 관광업계는 숙소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다. 서울에서 호텔을 구하지 못하고 인천, 수원 등 수도권에 묵는 관광객도 많아 불만의 빌미를 제공했다. 올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인 관광객은 1,080만명. 하지만 호텔 객실은 2만8,900실에 불과해 1만5,000~2만개 정도가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은 2009년부터 매년 10%가량 늘고 있어 수요공급이 왜곡돼 있는 상태다.
이를 간파한 미래가 선두에 섰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은 4건의 호텔펀드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 서울 구로구의 디큐브시티(디에스아이호텔) 인수가 유력시된다. 총 사업비 1조원 가운데 4,000억원 규모의 펀드가 투자될 것으로 보이는 디큐브시티는 호텔 백화점 오피스로 구성된 복합쇼핑몰이다. 올 중반엔 서울 광화문에 6성급 관광호텔(옛 금강제화 부지)을 착공한다.
경기 판교신도시엔 2014년 준공 예정인 총 16층 규모의 비즈니스호텔(판교호텔)을 짓고 있다. 투자규모는 1,800억원이며, 거래소에 상장된 공모펀드 '맵스리얼티1'의 자본도 투입됐다. 서울 용산역세권에도 최고급 관광호텔을 짓기 위해 지난해 사업부지를 2,3000억원 가량에 사들였다. 미래에셋은 이들 호텔의 운영을 위해 글로벌 사업자들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급 호텔 브랜드 도입을 위한 논의도 하고 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서울 시내 호텔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중국 일본 등에서 밀려오는 관광객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고, 특히 최고급 호텔이 부족해 수익성이 좋다고 판단했다"며 "지난 10년간 상업용 부동산시장의 대세가 오피스빌딩이었다면 앞으론 호텔 위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텔사업은 투자기간이 10년 정도로 길어 대기업 등이 뛰어들더라도 단기간에 공급부족을 해소하긴 힘들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다른 업체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3개월 안에 호텔펀드를 내놓기 위해 호텔로 개조 가능한 서울 시내 오피스텔빌딩과 신축 부지를 물색 중이다. 아시아자산운용(경기 화성시 비즈니스호텔), PS자산운용(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비즈니스호텔 투자 검토)을 비롯해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KTB자산운용 등도 투자대상을 찾고 있다. 여기에 '큰손'이라 불리는 국민연금도 가세했다.
그러나 호텔펀드가 장밋빛 미래만 보장하는 건 아니다. 최근 쏠림 현상이 심하자 결국 공급과잉으로 뒤바뀔 것이라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온다. 기대수익률을 연 6~8%로 예상하지만 운영 부실, 국내 정세 불안정 등으로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으면 안정적인 수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거액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 대상의 공모펀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설사 사모펀드에 가입하더라도 투자기간이 길어 자칫 자금이 묶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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