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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주해군기지 갈등, 방향을 바꿔야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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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주해군기지 갈등, 방향을 바꿔야 해결된다

입력
2012.03.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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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 갈등이 정점에 도달하면서 최악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사회갈등이 정점에 다다른 후에는 보통 두 가지 형태로 전개된다. 하나는 힘을 이용한 봉합과 계속되는 저항이다. 다른 하나는 돌파구를 찾기 위한 당사자들 사이의 접촉과 대화의 시도다. 그런데 사회갈등을 잘 해결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 그리고 현재 당사자들의 대응을 고려해볼 때 제주 해군기지 갈등은 첫 번째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갈등의 모든 당사자들은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각자의 입장과 이익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힘을 이용해 갈등을 봉합할 경우 갈등의 표출은 잠시 억제되겠지만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 앞으로 한국사회 전체가 치러야 하는 갈등 비용은 물론 강정마을이라는 공동체와 그곳의 주민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막다른 길에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어떤 방법을 제시하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도 하기 전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로 갈등이 계속된다면 상황이 완화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약간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첨예한 사회갈등의 해결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는 방법이라면 더욱 해볼 만하다.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시도는 정점에 다다른 갈등이 더 이상 파괴적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옥외에서 행동을 통해 하는 의견 표출을 실내에서 언어를 통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대화 테이블을 마련함으로써 가능하다. 현 상황에서 대화 테이블은 중앙정부와 제주도가 마련할 때 성공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들이 대화에 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갈등이 막다른 길에 다다랐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한 면이 있다. 사실 이런 큰 사회갈등에 직면했으면서도 모든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대화 자리 한번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은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화 테이블은 모두가 동등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당사자들이 한 공식적인 말들은 대화가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화 테이블에서는 당사자들 모두가 그런 공식적인 말에 덧붙여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대화 테이블에 앉는다고 해서 대화가 잘 이뤄지리란 보장은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당사자들이 마주 앉을지라도 서로 외면하거나 싸울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므로 한 시간이라도 제대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갖춘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는 그런 인적자원을 정부와 행정당국은 물론 다른 당사자들도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참으로 유감이지만 당사자들이 대화 테이블에 앉는다고 해서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화 테이블의 목표는 파괴적인 대립을 중단하고 모두가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갈등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또한 향후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할 여지가 얼마나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대화 테이블의 시도는 당사자들이 마주 앉는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 전체에 막대한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는 갈등의 당사자들이 떠안아야 할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 민주주의다. 강정마을의 주민들도, 시민단체들도, 제주도의 행정기관들도, 그리고 해군과 국방부도 속에 담아둔 말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맘껏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줘보자.

갈등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갈등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해결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이 만나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정주진 갈등해결 전문가·평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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