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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실처럼 버려진 나무처럼 인간은 연약해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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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실처럼 버려진 나무처럼 인간은 연약해서 아름답다

입력
2012.03.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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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인간은 기쁨과 비탄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시 '순수의 전조')고 했다. 그럼에도 연약한 인간이 삶을 살아내기란 쉽지 않다.

일기처럼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삶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두 여성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원래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며, 그래서 인간은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전시다. 8일 나란히 개막한 두 전시는 4월 1일까지 열린다.

◆조소희의 '사(絲)적 인상' 전

가는 실로 길게 실뜨기를 하고, 두루마리 휴지에 타자기로 불어성경책을 옮겨 적었다. 십자가, 지금, 나, 너 등의 단어와 텍스트가 사라진 문장부호가 적힌 투명한 기름종이는 속이 훤히 비치는 천으로 된 편지봉투에 담겼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해온 설치작가 조소희(41)씨의 '사적 인상'은 중의적이다.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느낌이자, 실처럼 여린 존재에 대한 소고다.

실이나 냅킨, 두루마리 휴지, 기름종이처럼 약하고 투명해 무게감이 없던 일상의 물건으로 조씨는 반복적인 노동을 한다. 실뜨기를 하거나, 타이프로 글을 쓰면서 시간을 축적해간다. 두 작업 모두 2003년부터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의미 없어 보이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작은 오브제들은 작품이란 존재감을 획득했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인생도, 예술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소소한 작업의 과정"이라는 그는 그래서 인간을 닮은 약한 재료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연약함을 깨닫는 순간인 것 같아요. 그때 가장 겸손해지고 솔직해지죠. 그러나 그런 모습은 숨겨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학습되잖아요. 자꾸 포장하다 보면 본질적인 게 날아가죠. 예술도 마찬가지죠. 가장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한 그 지점을 잡아보고 싶었어요." 인생과 다를 것 없는 예술에 대한 고찰은 구상 시인의 '시와 기어(綺語)'를 인용한 '예술과 기어'에 담았다. 기어는 불교에서 말하는 열 가지 죄악 중 말로 짓는 죄다. 서울 소격동 선 컨템포러리. (02)720-5789

◆송진화의 '열꽃' 전

귀엽게 보이던 나무 조각, 다가서 보니 눈물겹다. 밤새 울어 퉁퉁 부운 눈으로 씩 웃는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 맨 몸으로 엎드려 '힘겨움이 내 등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린다'는 조각은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절망의 순간을 포착했다. 매일매일 긴 나무막대 하나에 의지해 외줄 타는 기분은 '살아내기'에, 그럼에도 이승이 낫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과정은 '똥밭에 굴러도' 에 잘 담겼다.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삶을 형상화하듯, 나무조각가 송진화(50)씨의 작품은 안정감 있게 바닥에 선 작품이 별로 없다. 가슴을 에는 고통과 번민에 휩싸이면서도 쉽사리 놓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집착. "일기처럼 그때그때의 감정을 표현해 자각상과도 같다"는 송씨의 말처럼, 삶의 단편들이 나무조각에 새겨져 보는 이의 공감을 산다.

송씨는 버려진 나무를 사용한다. 팽나무, 감나무, 소나무 등 종류도 가지가지, 진주 양반 고택과 당진의 서민 집 기둥 등 출신도 다양하다. 사찰 해우소 기둥의 옹이는 멍든 가슴으로, 굼벵이가 지나간 흔적은 상처로 작품에 그대로 남아있다. "나무가 바로 나 같아요. 누군가의 집, 벤치였고, 쓸모가 다해 썩어 없어져도 그뿐이지만 새로 태어나죠. 나이테가 조밀할수록, 옹이질수록 아름답고 대견합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고통을 맞고, 절망 속에서 깨달음을 길어 올리는 것이 삶이라고 했던가. 송씨는 나무조각을 통해 사소한 감정의 편린들로 고단한 인생을 의연하고 태연하게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 (02)725-102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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